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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소프트뱅크, 54억 달러 ABB 로봇 인수…'피지컬 AI'로 휴머노이드 정조준

9억 달러 애질리티 인수 타진…대신 17.5억 달러 가치에 대규모 투자
'페퍼' 실패 딛고 산업용·가정용 로봇 동시 공략…"AI·물리세계 융합"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54억 달러 규모의 ABB 로봇 부문 인수를 추진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애질리티 로보틱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피지컬 AI' 비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과거 '페퍼'의 실패를 거울삼아 산업용과 가정용 로봇 시장을 동시 공략, 인공지능과 물리적 세계의 융합을 이루겠다는 손정의 회장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54억 달러 규모의 ABB 로봇 부문 인수를 추진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애질리티 로보틱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피지컬 AI' 비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과거 '페퍼'의 실패를 거울삼아 산업용과 가정용 로봇 시장을 동시 공략, 인공지능과 물리적 세계의 융합을 이루겠다는 손정의 회장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사진=로이터

소프트뱅크가 '피지컬 AI'라는 거대 비전 실현을 위해 로봇 산업에 다시금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과거 로봇 동반자 '페퍼' 등의 실패를 딛고, 산업용 로봇 시장의 거물인 ABB 로봇 부문 인수를 추진하는 동시에 유망한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발굴에도 공격적으로 나서는 양상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공학의 융합을 통해 물리적 세계의 AI를 선점하려는 손정의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23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최근 미국 오리건주에 본사를 둔 10년 차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인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 인수를 타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애질리티는 창고 내 상자 운반 등 산업용 작업을 수행하는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Digit)'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손 회장은 지난해 말 애질리티의 페기 존슨 CEO 등 관계자들을 만나 최소 9억 달러(약 1조2900억 원) 규모의 인수 가능성을 논의했다. 페기 존슨은 마이크로소프트 임원과 증강현실(AR) 기업 매직 리프(Magic Leap) CEO를 역임한 인물이다.

하지만 애질리티는 인수를 받아들이는 대신, 투자 유치 전 기업 가치를 17억5000만 달러(약 2조5100억 원)로 평가받는 신규 자금 조달 라운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소프트뱅크는 최종 인수 대신 이 펀딩에 대규모 투자자로 참여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현재 진행 중인 이 라운드는 시카고 소재 사모펀드 WP 글로벌 파트너스의 벤처 부문이 주도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3억 달러(약 4300억 원) 이상을 모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동 국부 펀드 역시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프트뱅크는 또한 지난 1년 내에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작하는 또 다른 업체에 투자할 가능성도 논의한 바 있다.

54억 달러 ABB 로봇 부문 인수…"AI·로봇 융합 비전"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소프트뱅크는 산업용 로봇 시장 전체를 겨냥한 대형 인수에도 나섰다. 이달 초, 소프트뱅크는 스위스의 거대 자동화 기업 ABB 그룹의 로봇 사업 부문을 54억 달러(약 7조7600억 원)에 인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ABB는 산업용 로봇 팔, 이동형 베이스 등을 공급하는 업계의 핵심 기업이다. 이번 인수는 2026년 중후반 마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프트뱅크는 약 7000명의 직원과 연 23억 달러(약 3조30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로봇 사업 역량을 확보한다.

손정의 회장은 당시 성명을 통해 "소프트뱅크의 다음 영역은 피지컬 AI"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ABB가 인공 초지능과 로봇 공학을 융합하려는 우리의 공동 비전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를 AI와 로봇 공학을 융합하려는 '피지컬 AI' 전략의 핵심 단계로 평가한다.

소프트뱅크는 반도체, 데이터센터, AI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 AI 전체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총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으며, 로봇은 이 비전의 물리적 구현을 담당한다. 지난 2년간 가정용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1X 테크놀로지스'와 AI 기반 로봇 제어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스킬드 AI(Skild AI)' 등에 투자하며 로봇 지능화에 주력한 행보도 같은 맥락이다. 2021년 로봇 개와 휴머노이드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매각한 이후, 소프트뱅크가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사를 직접 소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번 행보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물론 소프트뱅크의 로봇 투자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4년 손 회장이 직접 무대에 세웠던 '페퍼'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2020년 생산을 중단했고, 제조사인 프랑스 알데바란은 올해 초 파산을 신청했다. 소프트뱅크가 지원했던 로봇 피자 제조사 '줌(Zume)' 역시 2023년 문을 닫았다.

전(前) 소프트뱅크 임원 알록 사마는 "2014년 처음 만났을 때 손 회장은 페퍼에 집착하고 있었다"며 "그의 지능형 로봇 공학 비전은 당시 기술보다 다소 앞서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우리가 그의 비전에 훨씬 더 가까워졌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페퍼'의 실패 딛고…AI 발전 업은 '디짓'의 등장


최근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로봇 공학계의 오랜 난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빨래 개기나 낯선 지형 탐색 등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작업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벤처 캐피털의 관심도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은 선반 높이나 계단 등 인간의 신체 형태에 맞춰 설계한 기존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애질리티의 로봇 '디짓(Digit)'이 대표적이다. 약 5피트 9인치(약 175cm) 키의 디짓은 사람처럼 걷는 능력을 가졌지만, 다리는 홍학처럼 뒤로 구부러지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현재 소수의 디짓이 워싱턴주 서머의 아마존 물류 시설에서 상자를 옮기고 있으며, 자동차 부품 제조사 셰플러(Schaeffler) 그룹과 물류 회사 GXO 등이 산업 현장에 도입하고 있다. 애질리티는 2027년 초까지는 격리된 작업 공간이 아닌, 사람과 협업 가능한 안전성을 갖춘 로봇을 선보일 계획이다.

시장은 소프트뱅크의 ABB 인수를 단순한 산업용 로봇 사업 구성 확보 이상의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MST 파이낸셜의 데이비드 깁슨 수석 애널리스트는 손 회장이 "모두가 (미래의)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현재의) 기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깁슨은 ABB가 "AI의 모든 것이라는 장기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미래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량 생산하는 제조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소프트뱅크의 데이터 센터 전략과도 일치한다. 소프트뱅크는 오픈AI에 100억 달러(약 14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동시에, 오픈AI의 컴퓨팅을 지원할 '스타게이트' 데이터 센터 구축에 약 180억 달러(약 25조 원)를 별도로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AI 모델(오픈AI)과 그 기반 시설(스타게이트)에 동시 투자하는 것처럼, 휴머노이드(애질리티 등)와 그 제조 기반(ABB)을 함께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애질리티 투자와 ABB 인수는 손 회장이 꿈꾸는 '피지컬 AI' 비전 실현을 위한 핵심 포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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