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생산·가격전쟁에 '유령 판매'까지…성장 신화의 그늘
품질·신뢰 앞세운 일본차의 귀환, 현지화 전략으로 中 소비자 공략
품질·신뢰 앞세운 일본차의 귀환, 현지화 전략으로 中 소비자 공략

뻥튀기 판매에 '0km 중고차'…거품 붕괴 전조
중국 자동차 공급망의 속사정에 밝은 대만 부품 공급업체들에 따르면, 중국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일부 견고한 수요가 시장을 지탱하고는 있지만, 산업 전반에 가해지는 압박은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제조사가 계열 판매망을 동원해 팔리지 않은 재고를 서로 사고파는 이른바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파는' 식의 허위 판매 관행은 판매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착시 효과를 낳았다. 이 기이한 재고 처리 방식은 '주행거리 0km' 신차급 중고차라는 새로운 시장을 탄생시키는 촌극을 빚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현상을 시장의 과잉 공급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거품 붕괴의 명백한 '전조 신호'로 해석한다.
中 토종 EV 주춤하자…기회 잡는 일본차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귀환에서 감지된다. 지난 2022년과 2023년 사이 비야디(BYD), 니오, 샤오펑 등 중국 토종 브랜드에 밀려 고전했던 닛산, 토요타, 혼다 등 주요 일본 업체들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닛산과 토요타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신에너지차(NEV)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동시에, 전통 내연기관 모델에서도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들 기업의 총매출은 2024년 중반부터 눈에 띄게 회복됐다. '보수적이지만 신뢰도 높은 품질'이라는 이미지가 중국 중산층 소비자들에게 다시금 매력적으로 다가선 결과라는 분석이다. 포드나 폭스바겐 같은 유럽계 합작사들 역시 디자인, 가격, 스마트 기능 등을 현지화하며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전기차 구매 가격과 유지보수 비용이 꾸준히 하락하면서, 과거 고가품이던 전기차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이는 경쟁의 무대를 저가 시장으로까지 넓히는 불씨가 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가격 파괴 현상이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 구축보다 외형 성장에만 몰두했던 자금력이 약한 군소 업체들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단가 인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업체들은 현금 흐름 악화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 채무 불이행 위험에 놓일 수 있다.
고성장 시대의 종언, 생존 위한 구조조정 돌입
중국 전기차 시장의 절대 강자인 BYD 역시 이런 출혈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BYD는 내수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펴며 가격 전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다만 이런 전략은 세계 전기차 평균 판매 가격 하락을 가져와, 장기에는 수익성이 나빠질 우려를 낳고 있다.
업계 분석가들은 중국의 배터리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인 '초고속 성장'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구조 재정비' 단계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잉 생산 설비, 저조한 공장 가동률, 나날이 쌓이는 재고, 그리고 끝 모르는 가격 경쟁은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려운 심각한 수급 불균형의 명백한 증거다. 수출 물량이 일부 숨통을 틔워주고는 있지만, 국내의 막대한 초과 생산량을 모두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 축소와 경제 전반의 신뢰 약화 또한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여파는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수익성은 나빠지고 경쟁의 강도는 극한에 달했으며, 소규모 업체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에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중장기에는 산업 체질을 개선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구조조정을 통한 폐업과 인수합병(M&A)이 빨라지고, 배터리 효율 개선이나 차세대 반도체 제어기 같은 기술 고도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대만의 한 부품업체 임원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의 이 고통스러운 조정 과정은 결국 중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더 성숙하고 회복력 강한, 지속 가능한 전기차 산업을 구축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