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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삼성, 멕시코 '가상수입' 세금분쟁…북미 생산기지 철수 검토

패소 시 6년치 이익 넘는 3000억 페소 추징금…'이중과세' 법리 공방
멕시코 진출 美 기업도 동일 위험 노출…USMCA 재협상 '돌발 악재'
멕시코 티후아나 삼성공장. 삼성이 멕시코 국세청과의 세금 분쟁에서 패소하면 3000억 페소가 넘는 추징금을 내야 해 북미 생산기지 철수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도 동일한 세금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어 USMCA 재협상의 돌발 악재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WAVY이미지 확대보기
멕시코 티후아나 삼성공장. 삼성이 멕시코 국세청과의 세금 분쟁에서 패소하면 3000억 페소가 넘는 추징금을 내야 해 북미 생산기지 철수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도 동일한 세금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어 USMCA 재협상의 돌발 악재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WAVY
삼성의 북미 생산기지인 멕시코에서 사업 철수 가능성이 제기됐다. 멕시코 국세청(SAT)과 수년간 끌어온 '가상 임시 수입' 관련 부가가치세 분쟁에서 삼성이 패소하면, 수천억 페소에 이르는 막대한 추징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세무 분쟁을 넘어 멕시코의 투자 환경과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뿌리마저 흔들 수 있는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현지에 진출한 다른 나라 기업들까지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멕시코 현지 언론 라손이 14일(현지시각) 전했다.
사건은 멕시코의 독특한 수출 지원 제도인 '수출 제조업·마킬라도라·서비스 산업 진흥 프로그램(IMMEX)'에서 비롯됐다. 이 제도는 수출용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를 임시 수입하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고, 완제품 수출 뒤에 정산하는 구조다. 문제의 불씨는 이 제도의 '가상 수입' 조항에서 지펴졌다. 이 조항은 IMMEX 혜택을 받은 기업이 완제품을 수출하지 않고 멕시코 내수 시장에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예외 규정이다.

대법원서도 엇갈린 '이중과세' 해석


멕시코 국세청은 삼성과 같은 대규모 제조업체와 마킬라도라 기업들이 이 조항을 악용해 막대한 세금을 피한다고 주장한다. 국세청의 논리를 지지하는 멕시코 대법원의 레니아 바트레스 과다라마 대법관은 지난해부터 "이런 방식으로 해마다 2500억 페소(약 19조 원)의 세금이 빠져나간다"고 지적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삼성 측과 산업계는 국세청의 주장이 사실상 '이중 과세'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가상 수입 제도가 지난 30년간 멕시코 산업화를 이끈 핵심 동력이었으며, 국세청의 새로운 해석은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조치라는 비판이다. 멕시코 대법원의 야스민 에스키벨 모사 대법관 역시 지난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국세청의 과세 요구는 명백한 부가가치세 이중 징수"라는 법리 의견(판례 해석 충돌 안건 08/2025)을 내며 바트레스 대법관과 정면으로 맞섰다.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삼성이 소송에서 질 경우 감당해야 할 금액은 천문학적이다. 9%를 웃도는 복리 이자율과 각종 벌금, 연체료를 포함한 추징 예상액은 총 3000억 페소(약 23조 원)를 훌쩍 넘는다. 이는 삼성 멕시코 법인의 6년 치 순이익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기업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규모다. 사정이 이렇자 이재용 회장이 이끄는 서울 서초구의 삼성 본사에서는 패소에 대비해 멕시코 사업장을 모두 닫고 다른 미주 국가로 옮기는 비상 계획을 검토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 넘어 美 기업·USMCA로 번지는 파장


현재 이 사건은 멕시코 대법원의 새로운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앞서 대법원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판단을 미룬 바 있어, 새로 구성된 대법관들의 연방 행정부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삼성 멕시코 법인의 토마스 윤 법인장으로서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 강경파들이 삼성의 철수를 반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의 파장은 삼성 한 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법원이 국세청의 손을 들어준다면, IMMEX 프로그램을 활용해 온 자동차, 항공우주 등 멕시코에 진출한 다수의 미국 기업도 똑같은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판결 결과는 멕시코 외국인 투자 환경에 치명타를 안기는 동시에,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무장관이 주도하는 USMCA 재협상에서도 예기치 못한 암초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기업들이 부당한 과세에 집단 반발한다면 멕시코 정부는 외교적으로도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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