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440억 유로 투자해 2030년 점유율 20%…인텔·ST 사업 잇따라 좌초

유럽반도체법(Chips Act)은 연구개발·제조·검사·포장 전 과정을 지원하는 세 가지 축으로 짜여 있다. 이 가운데 제조 설비 구축을 담은 두 번째 축이 ‘반도체 자급률’ 확보의 핵심이지만, 독일·프랑스 등 메가팩토리 사업이 연이어 멈추면서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졌다.
독일·프랑스 대형 투자 잇달아 멈춰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300억 유로(약 48조 9600억 원)를 들여 인텔이 세우려던 공장은 지난 7월 공식 취소됐다. 독일 정부가 99억 유로(약 16조 1500억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나, 인텔 측이 치솟는 비용과 고객 미확정 등을 이유로 포기했다.
프랑스 크롤에서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글로벌파운드리스가 추진하던 75억 유로(약 12조 2400억 원) 규모 합작 팹도 지난 1월부터 보류 상태다. 프랑스 정부가 29억 유로(약 4조 7300억 원)를 지원하고 설비 가동은 2027년 목표였으나, 자동차·산업용 반도체 수요 부진과 재고 과잉을 넘지 못했다.
반면 독일 드레스덴에 짓는 ESMC 합작공장은 순항 중이다. TSMC·보쉬·인피니언·NXP가 100억 유로(약 16조 3100억 원)을 들여 28·22나노미터와 16·12나노미터 칩을 찍어내기로 했으며, 독일 정부가 50억 유로(약 8조 1500억 원)를 보조한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뒤처진 유럽
미국은 지난 2월 통과한 칩스법(CHIPS Act)에 527억 달러(약 73조 1700억 원)를 배정하고 투자액의 25%를 세액공제 형태로 돌려준다. 2025년 초까지 337억 달러(약 46조 7900억 원)를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한국은 2047년까지 622조 원 규모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K-반도체 전략’을 내놓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DRAM 시장 70%, 낸드플래시 54%를 차지하며 AI용 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주도한다.
일본은 2026년까지 10조 엔(약 94조 1900억 원)을 정부 보조금과 인센티브로 지원해 TSMC 구마모토 팹과 라피더스의 2나노미터 공장 건설을 돕고 있다. 중국은 빅펀드 3단계에만 3440억 위안(약 67조 원)을 쏟아부으며 국산 반도체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이 넘어야 할 과제
업계 관계자는 “유럽 반도체법이 성공하려면 허가 절차를 단순화하고 브뤼셀과 회원국 간 조율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승인에만 수년이 걸리고 투자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는 민간 자본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숙련 인력을 확보하고 설계·제조·포장·검사 전 과정을 잇는 완전한 공급망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유럽은 대부분 성숙 공정 위주 설비에만 의존해 AI·고성능컴퓨팅용 최첨단 칩 생산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2030년까지 글로벌 점유율 20%를 지키려면 정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실행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업계 평가가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