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물 국채 금리 5.72%로 27년 만에 최고치...예산 압박 확대 속 ‘스타머 순간’ 우려

2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30년물 영국 국채(길트) 금리는 이날 8bp(0.08%포인트) 급등한 5.72%로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년물과 10년물 국채 금리도 각각 4bp, 7bp 상승하며 동반 오름세를 보였다.
외환시장에서는 영국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최대 1.3% 하락하며 주요 통화 중 가장 부진했고, 영국 증시의 대표 지수인 FTSE100 지수는 0.87%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장기 국채 금리 급등이 전 세계 금리 상승 흐름과 영국 국채 시장 특유의 불안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국채 기준물인 10년물 금리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당 정부가 여러 고위 자문직 인사를 교체한 데 따른 정치적 압박과 맞물려 시장 불안을 자극했다. 시장은 이번 인사 개편을 가을에 예정된 예산안 발표에 대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보고 있으며, 정치적 ‘리셋’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국채는 보유자 구성의 특성상 외국계 헤지펀드 비중이 높아 뉴스 이벤트와 위험 선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지난 4월 글로벌 채권 매도세가 확산될 당시에는 30년물 금리가 하루 만에 30bp 급등한 사례도 있다. 이번 주 상승은 당시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장기 금리가 다시 1998년 이후 최고치로 되돌아가면서 영국 재정 건전성에 대한 압박이 재차 부각됐다.
세금 인상 불가피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350억 파운드(약 65조5000억 원)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지출 절감과 증세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그렇지만 최근 정부가 복지 개혁안을 의원들의 반발로 철회한 전례를 고려하면 정치적 난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은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모두 적자를 기록하며 취약한 재정 상태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 금리 급등을 억제하려면 리브스 장관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 등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자산운용사 나인티원의 제이슨 보르보라-신 멀티에셋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CNBC에 “리브스 재무장관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더 높은 세금과 지출 축소를 포함한 정치적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면 장기 금리 상승세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단기적으로 성장 둔화를 초래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견고한 재정 운용 방식을 보여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타머 순간’ 경고
이번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2022년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미니예산 사태’와 비교하며, ‘스타머 순간(Starmer Moment)’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다만 이번 금리 상승은 당시처럼 하루 만에 폭등한 극단적 사례와는 달리 점진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영국 장기물 시장은 전통적 투자자였던 확정급여형(DB) 연금펀드와 보험사들의 수요 약화와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겹치면서 민감해졌다. 장기물 국채 발행 규모를 축소한 영국 부채관리청(DMO)은 시장 기능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장기 금리의 변동성이 재정 운용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파운드화 약세도 장기 금리와 맞물리며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제프리스 인터내셔널의 모히트 쿠마르 유럽 수석 전략가는 “세금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추가 인상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국면”이라며 “영국 장기물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며, 수익률 곡선 전반에서 스티프닝 전략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채 시장도 요동쳤다. 미국에서는 관세 수입 전망 불확실성으로 30년물 국채 금리가 한때 5% 근처까지 올랐고, 독일·프랑스·네덜란드 30년물 금리도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수년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우려가 지속됐으나, 영국은 유로존이나 미국보다 물가 압력이 더욱 뚜렷하게 되살아나며 장기 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