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 평화협정' 제안에 유럽 '국경불변' 원칙 맞서
젤렌스키 '영토 불가' 고수… 중대 분수령 맞은 대서양 동맹
젤렌스키 '영토 불가' 고수… 중대 분수령 맞은 대서양 동맹

월요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이번 회담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 등 유럽의 핵심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이번 회담은 지난 금요일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합의하지 못한 직후 잡혔다. 당초 푸틴과의 회담에서 휴전 확보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휴전은 "종종 지켜지지 않는다"며 "곧바로 평화 협정으로 가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의 배경에는 '전쟁을 빨리 끝내는 성과'를 미국 유권자에게 보여주고 국방비 부담을 줄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셈법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비판을 삼가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에서 러시아가 자포리자와 헤르손의 전선을 얼리는 대가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안 도네츠크 지역에서 군대를 물리는 내용의 평화안을 내놓았다고 전해졌다. 이는 사실상 러시아가 점령한 땅(도네츠크·루한스크 대부분과 크름반도)에 국제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 '나토 5조 유사' 안보 보장, 새 대안 될까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안보 보장 카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스티브 윗코프 미국 특사는 일요일 CNN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판도를 바꿀 만한 강력한 안보 보장"을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윗코프 특사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안보 보장을 위해 사실상 (나토) 5조와 비슷한 수준의 문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합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 구상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대신 미국과 유럽이 함께 안보를 보증하는 방식으로, 러시아의 나토 확장 저지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나토 5조는 회원국 가운데 한 곳이 공격받으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보고 함께 대응하는 집단방위 조항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빌미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할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생긴 난민, 군사 지원, 에너지 가격 불안 등 내부 어려움이 큰 유럽으로서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협상 필요성을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국제 국경은 힘으로 바꿀 수 없다"면서도 "이는 오직 우크라이나만이 내려야 할 결정"이라며 원칙적인 뜻을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헌법상 영토를 넘겨줄 수 없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하며,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정상회담 구상을 이야기하는 등 최종 합의에 앞서 휴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거래 중심'으로 변한 미-우크라 관계도 변수
이번 백악관 회동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3차 세계대전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백악관에서 내쫓았던 거친 설전 뒤 처음이다. 두 정상은 지난 4월 교황 장례식에서 만나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광물 계약을 맺어 핵심 자원에 대한 지분을 챙기고, 우크라이나가 미국 무기 값을 치르겠다고 밝히는 등 두 나라 관계는 도움에서 거래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과 유럽 지도자들의 집단 의지가 부딪칠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 영장이 내려진 푸틴 대통령을 레드카펫까지 깔며 환대하고 "환상적인 관계"라고 치켜세운 것은, 개인 관계가 협상 방향을 흔들 수 있다는 위험 신호다. 유럽 정상들이 대거 동행하는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행동을 견제하고 다자 틀을 지키려는 의도가 담겼지만, 트럼프가 이를 무시하고 홀로 합의를 밀어붙인다면 대서양 동맹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번 백악관 회담은 트럼프식 '빅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빠른 평화'를 내세워 우크라이나의 영토 일부를 포기하게 하고 나토를 대신할 안보 보장을 맞바꾸려 하며, 유럽은 '국경은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맞서는 구도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를 넘길 수 없다는 국내 여론과 미국의 압박 사이에서 어려운 외교적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