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취임 이후 잇따라 발표한 고율 관세 정책이 100일을 넘긴 가운데 월가와 실물경제의 반응은 초기 우려와는 달리 점차 무덤덤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관세로 인한 세수 증가와 일부 기업의 미국 내 투자 약속이라는 성과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물가 상승과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은 여전히 부담이라고 지적했다고 ABC뉴스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세수는 늘었지만…투자는 유보, 물가는 압박
ABC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밀어붙인 관세 정책은 세계 각국에 최대 50%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에 25%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미국 예일대 산하 예산연구소인 예일버짓랩은 이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재 미국 소비자들이 직면한 평균 관세율이 20.6%로 1910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고율 관세는 미국 정부의 세수에는 직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관세로 거둬들인 세수는 약 270억 달러(약 37조2000억원)로 올해 들어 누적 기준 1000억 달러(약 137조9000억원)를 넘어섰다.
마크 잔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말까지 관세 수입이 3000억 달러(약 413조7000억원)를 넘을 수 있다”며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육박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세수 증가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잔디 이코노미스트는 “관세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인 데다 차기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재정 기반으로 삼기에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가 미국 내 제조업 투자를 자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악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애플, 엔비디아, 머크, 존슨앤드존슨, 현대차, 스텔란티스 등 수십 개 기업이 미국 내 신규 투자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모리스 코언 미국 듀크대 제조업·공급망 명예교수는 “관세의 기본 취지는 제조업 리쇼어링(본국 회귀)을 유도하고 무역 불균형을 개선하는 데 있다”며 “일정 부분 긍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티아스 베르넹고 벅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기업 약속들은 정치적 고려에 따른 일시적인 제스처일 가능성이 크다”며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않고 있어, 실제 투자로 이어질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 물가 자극 가능성에 연준 부담도 커져
관세는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기준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2.7% 상승하며 전문가 예상치에 부합했지만 지난 1월의 3%보다는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ABC뉴스는 “완구류처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은 지난 2개월 동안 가격 상승 속도가 6배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의류, 가구, 침구 등 수입 비중이 높은 품목들도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베르넹고 교수는 “관세가 도입되면 일시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연방준비제도가 고금리를 유지하게 되면 경제 둔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관세 정책의 영향은 엇갈리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미국 우선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백악관은 “관세와 연계된 미국 내 투자 유치는 기술, 제조, 인프라 분야에서 수조달러 규모의 경제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ABC뉴스는 “관세 정책이 법원 판결에 따라 위헌 판단을 받을 수 있고 다음 행정부에서 전면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선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