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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핵무기 50개로도 부족"...미국의 이란 공습이 부른 나비효과

1994년 북한 핵시설 타격 계획 재현 우려..."비핵화 협상 물 건너갔다"
북한 김정은이 주요 군사 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북한 김정은이 주요 군사 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핵무기야말로 정권 생존의 마지노선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6(현지시각)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북한 김정은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공습 때문에 김정은 정권의 비핵화 의지는 더욱 약해지고 핵무기고 확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최신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최대 50개의 핵탄두와 최대 40개의 핵탄두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핵분열성 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5년 전 30~40개로 추산됐던 것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라크·리비아 전철 의식..."핵 포기는 정권 종말"


서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명현 박사는 "김정은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어 기쁘다"고 분석했다고 WSJ가 전했다. 김정은이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 핵 야망 때문에 군사 공격을 자초한 국가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몇 년간 핵 프로그램을 지속 강화해왔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강력한 보검"이라고 칭하며 20229월 북한의 핵 교리에 선제 타격을 허용하는 조항을 최초로 추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중 선의의 표시로 철거됐던 북한의 주요 핵실험장도 같은 해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세종연구소 이용준 이사장(전 한국 핵특사)"한번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WSJ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국은 지난 주말 포르도우, 이스파한, 나탄즈에 있는 이란의 주요 핵시설 3곳을 공습했다. 이스라엘도 이란의 핵시설들을 광범위하게 공습했을 뿐만 아니라 이란의 핵 과학자들도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격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주장했으나, 유출된 미국 예비 정보 보고서는 미국의 공격으로 이란의 핵 활동이 수개월 지연됐다고 평가했다.

◇ 트럼프-김정은 재회담에도 "불신의 골" 더 깊어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과 2019년 세 차례 만났다. 대통령에 복귀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인정했으나 미국이 대북 "변함없는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한 추가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과 20156자회담에서 미국 특사를 지낸 시드니 A. 세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란 공격이 김정은의 미국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미국은 1994년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을 계획했다고 당시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이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미국은 공격을 실행하지 않았으나 북한은 이를 교훈 삼아 핵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북한은 1950-53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연합군의 끊임없는 폭격으로 나라가 폐허가 됐다. 이로 인해 북한의 건국자이자 현 지도자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은 국가의 산악 지형을 활용해 광범위한 군사 인프라와 지하 단지를 건설했다. 그 후 1950년대부터 소련의 지원을 받아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평양은 지금의 테헤란처럼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이러한 시도가 충분히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1994년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을 계획했다. 북한은 2002년까지 핵무기 프로그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무렵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북한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 세계 최초 탈퇴국이 됐다. 3년 후인 2006년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2002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폭로한 이란 반체제 인사 알리레자 자파르자데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은 테헤란이 이란의 지하 터널과 핵시설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파키스탄의 한 핵 과학자도 나중에 북한, 리비아, 이란에 핵 기술을 비밀리에 제공했다고 시인했다.

비엔나 오픈 핵 네트워크의 분석가 티안란 쉬는 "북한은 침투하기 어려우나 핵 과학자와 같은 고위 관리들의 제거에 대한 우려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란 국회의원들도 NPT와의 협력 중단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고 NPT 탈퇴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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