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노르웨이도 기부금 줄여...빈곤국 어린이 백신 사업에 비상

이번 결정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Gavi가 미국이 지원한 80억 달러(약 10조 8500억 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내려졌다고 26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케네디 장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Gavi 모금 행사에 비디오 메시지를 보내 "Gavi가 백신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하고, 미국이 지원한 수십억 달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케네디 장관은 "미국은 Gavi가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보여줄 때까지 더 이상 돈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케네디 장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지 밝히지 않았다.
◇ 미국의 지원 중단 배경
미국의 지원 중단은 케네디 장관의 백신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와 트럼프 행정부의 해외 원조 축소 정책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케네디 장관은 올해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 합류하면서 백신 규정과 건강한 식습관에 큰 변화를 약속했다. 케네디 장관은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제약단체와 의학 전문가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Gavi는 즉각 반박했다. Gavi는 "백신 안전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세계보건기구(WHO) 등 전문가 집단의 엄격한 검토를 거친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부와의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Gavi가 앞으로 백신을 더 많이 공급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Gavi에 약 3억 달러(약 4100억 원)를 지원했고, 지금까지 미국이 지원한 돈은 모두 80억 달러(약 10조 8500억 원)에 이른다. 미국은 코로나19 백신 등에서 Gavi의 최대 기부국 중 하나였다.
영국도 앞으로 5년간 Gavi에 12억 5000만 파운드(약 2조 300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기존 기부금(16억 5000만 파운드, 약 3조 원) 보다 줄어든 액수다. 노르웨이 등 다른 주요 기부국도 기부금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지원 중단이 빈곤국 어린이 백신 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다.
◇세계 백신 사업 위기와 전문가 우려
미국에 본부를 둔 글로벌 개발 센터의 재닌 매단 켈러 세계 보건 정책 부국장은 "이번 삭감이 가장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에게 미칠 영향은 매우 클 것"이라며 "백신으로 막을 수 있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Gavi는 지금까지 10억 명 이상의 어린이에게 백신을 공급했고, 약 2000만 명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23년 한 해만 해도 57개 개발도상국에서 폐렴, 로타, 힙, 자궁경부암 등 백신으로 130만 명의 사망을 막았다.
미국의 지원 중단으로 Gavi는 앞으로 5년간 90억 달러(약 12조, 2100억 원) 모금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른 기부국과 민간단체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게이츠 재단이 자금 부족을 모두 메울 수는 없다"며 "각국 정부가 Gavi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게이츠는 "수십 년 만에 올해 전 세계에서 죽는 어린이 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빌 게이츠는 "Gavi에 대한 완전한 자금 지원은 어린이 사망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이번 결정이 세계 보건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 아툴 가완데(전 바이든 행정부 글로벌 보건 담당)는 "이번 결정은 충격적이고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Gavi는 "항상 모든 과학적 근거를 고려하며, 미국 정부와의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Gavi는 유니세프, 세계은행 등과 함께 빈곤국에 무료 백신을 공급하는 대표적 국제기구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Gavi의 모금 목표 달성에 큰 차질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영국과 노르웨이 등 주요 기부국도 기부금을 줄이고 있어 세계 보건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