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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미·중 양강 사이 '전략적 독립' 추진...신뢰성 부족이 발목

폰데어라이엔 "역사는 머뭇거림 용서 안 해"...마크롱도 자립 필요성 강조
"중국도 미국도 EU에 양보 안 해"...브뤼셀 효과 소멸에 실질적 대응력 부족
유럽연합 깃발.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연합 깃발.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의 강압적 통상정책과 중국의 비타협적 태도 사이에서 유럽연합(EU)이 양 초강대국으로부터의 '전략적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EU의 신뢰성 부족과 실질적 대응 역량 한계로 인해 이러한 구상이 실현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7일(현지시각)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주 "이번 10년 안에 새로운 국제 질서가 등장할 것"이라며 "역사는 머뭇거리거나 미루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의 임무는 유럽의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전략적 자율성의 최대 옹호자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매일 지시를 받고 싶지 않다"며 유럽의 자립 필요성을 역설했다.

4개월 넘게 트럼프의 공세적 통상정책에 시달린 EU는 중국에 올리브 가지를 내밀며 정치적 유대 개선 대가로 경제적 양보를 요구했으나, 브뤼셀 내부에서는 중국이 이를 거부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U는 국방과 기술에서는 미국에, 원자재와 청정기술에서는 중국에, 에너지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위험한 의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러나 EU의 전략적 독립 구상은 현실적 제약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 기업들은 어느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러한 결정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미루고 있다. 유럽기업기구의 제이슨 콜린스 회장은 "어떤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도 다음 주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다"며 "비즈니스 투자를 고려할 때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은 미국의 수출 통제로 중국에 대한 최첨단 장비 판매를 이미 중단해야 했다. ASML의 세바스찬 하인 지정학 책임자는 "우리가 초크 포인트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그 가치는 줄어든다"며 "상대방에게도 초크 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장 큰 문제는 EU의 신뢰성 부족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헨리 파렐 정치학자는 "전략적인 방식으로 이를 수행할 수 있으려면 역량뿐만 아니라 신뢰성도 있어야 하는데, 유럽은 신뢰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은 항상 닭처럼 굴며, 결코 사용하지 않는 반강압 메커니즘을 만들어낸다"며 "브뤼셀 효과가 죽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EU가 러시아와 분리되었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EU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원조를 보낸 것보다 러시아의 에너지와 원자재에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EU 고위 관리들 사이에서는 두 초강대국에 대한 반격을 거부하는 것이 나약함의 신호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내부자들은 EU와 중국 관계에서 "레드라인"에 대한 언급이 잦았으나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다음 달 베이징에서 열릴 EU-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주요 불만에 대해 양보할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이 질 낮은 협상을 받아들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관리들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통화 이후에도 유럽이 희토류 원소를 미국으로 반출하더라도 중국의 수출 통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소식통은 "그들은 우리를 우리 자리에 가둬두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의 브래드 세서 경제학자는 시진핑이 서구 기업 임원들에게 한 말을 인용하며 "서구에서는 누가 당신의 왼쪽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돌려대는 관념이 있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반격을 가한다"고 회상했다. 세서는 "보복이 없다면, 어떤 협상도 오랜 유럽 정책의 변화를 위해 미국의 새로운 관세의 일부를 철회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렐은 "유럽이 어느 정도의 기술적 독립성을 갖지 못한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며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능력과 실질적인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진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EU의 전략적 독립 구상은 개념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실질적 대응 역량과 의지 부족으로 인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중 양강의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EU가 실질적인 독립 역량을 구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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