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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르네사스, 차세대 전기차 파워 반도체 생산 중단 결정 '충격'

중국發 공급 과잉·가격 경쟁 심화에 수익성 악화
EV 시장 성장 둔화까지 겹쳐 사업 철수
르네사스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 심화로 인해 차세대 전기차 파워 반도체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르네사스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 심화로 인해 차세대 전기차 파워 반도체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사진=로이터
일본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가 차세대 전기차(EV)용 파워 반도체 생산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지난 29일(현지시각)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르네사스는 당초 2025년 초 군마현 다카사키시에 있는 자사 공장에서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EV용 차세대 파워 반도체, 특히 고효율의 탄화규소(SiC) 반도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EV 시장 성장세가 예상보다 둔화되면서 시황이 악화된 데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대폭 늘리면서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 결국 생산 단념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워 반도체는 전압 제어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르네사스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제품은 고효율의 탄화규소(SiC) 기반이었다. SiC는 기존 실리콘 소재보다 높은 전류를 견딜 수 있어 EV에 적용하면 주행 거리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르네사스가 EV용 차세대 파워반도체, 특히 고효율의 탄화규소(SiC) 반도체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EV 시장 성장 둔화와 중국 업체의 급부상, 가격 경쟁 심화로 인해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르네사스는 이미 2025년에 다카사키 공장의 SiC 담당팀을 해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의 시바타 히데토시 사장은 지난 2월 설명회에서 "시장 환경을 매우 엄격하게 보고 있다"고 언급하며, 시장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내비친 바 있다.

◇ 수익성 악화에 발목 잡힌 차세대 파워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후지 경제에 따르면 2024년 SiC 반도체 시장 규모는 3910억 엔(약 3조7109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2월 예측치인 4915억 엔(약 4조6625억 원, 7% 증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유럽의 보조금 종료 등으로 EV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했고, 그 결과 SiC 반도체 수요 증가세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처럼 시장 성장세가 둔화된 배경에는 유럽의 EV 보조금 정책 종료와 더불어 중국 업체들의 웨이퍼 및 칩 생산 확대로 인한 공급 과잉 심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 반도체 상사 관계자는 "SiC 제품 가격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반도체 현지 조달 비중을 높이고 있는 점도 르네사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현지에서 반도체를 조달하는 비율을 높이면서 일본 등 외국계 업체의 시장 진입이 더욱 어려워진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업계 후발주자인 르네사스는 단기적인 채산성 확보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중국 업체들과의 치열한 가격 경쟁을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르네사스는 SiC 분야에서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나마 장기적으로나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 기존 사업 재편 및 생산 거점 통합 가능성


한편, 르네사스는 야마나시현 가이시에 있는 고후 공장과 다카사키 공장에서 기존 실리콘 소재 기반의 파워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 중 다카사키 공장은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든 기술을 활용하고 있어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더욱 심화, 일부 제품은 생산을 중단하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문을 연 고후 공장은 당초 2025년 초 양산을 목표로 했으나 아직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 공장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어 향후 시황 회복에 따라 양산을 개시한다는 목표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다카사키 공장의 파워 반도체 사업 재검토가 본격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르네사스의 국내 생산 거점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르네사스는 기존 실리콘 기반 파워반도체 생산은 계속하지만, 이 역시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부 제품의 생산 축소 및 사업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 경쟁사들의 동반 부진 심화


르네사스의 어려움은 비단 이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SiC 반도체 투자 확대로 인해 로옴은 2025년 3월 결산에서 12년 만에 순손실을 기록했다. 또한, 미국 테슬라의 주요 협력사이기도 한 스위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주가 역시 2024년 이후 현재까지 약 50% 하락하는 등 파워 반도체 업계 전반에 걸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 로옴도 SiC 반도체 투자 부담으로 12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고, 글로벌 경쟁사(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의 주가 역시 크게 하락하는 등, 업계 전반이 EV 시장 둔화와 가격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SiC 웨이퍼 제조업체인 미국 울프스피드는 파산보호신청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르네사스는 지난 2023년 울프스피드와 10년간 기판 공급 계약을 맺고 20억 달러(약 2조7502억 원)를 선지급한 바 있어, 울프스피드의 경영난이 심화될 경우 투자금 회수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iC 웨이퍼 공급을 위해 미국 울프스피드와 10년간 계약을 맺었으나, 최근 울프스피드가 파산보호(챕터11) 신청 준비에 들어가면서 르네사스의 선급금 회수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 수익성 악화 지속…디지털 전환 투자 가속화


앞서 르네사스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결산에서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급감한 260억 엔(약 2466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당시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의 시바타 히데토시 사장은 "미국의 관세로 단가가 오르면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하며 2분기 매출 전망치를 5%가량 낮춰 제시하기도 했다.

르네사스는 같은 날 2025년 상반기 매출 전망치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한 6107억 엔(약 5조7937억 원)으로 제시했다. 엔화 강세와 더불어 공장 가동률 조정에 따른 대리점 재고 감축 영향으로 영업이익률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포인트 하락한 26.1%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한 3087억 엔(약 2조9286억 원)으로, 산업·인프라·IoT 부문은 1508억 엔(약 1조4306억 원, 12% 감소), 자동차 부문은 1553억 엔(약 1조4733억 원,13% 감소)을 기록했다. 특히 르네사스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해 생성형 AI 열풍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나 급감한 215억 엔(약 2039억 원)에 그쳤다.

시바타 사장은 당시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고객들은 다소 관망하는 자세이며, 산업 기기 부문은 1분기 재고 조정이 마무리되면서 매우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워반도체 시장은 2025년 하반기부터 재고가 정상화되고 2026년 이후 EV 및 전동화 확대에 힘입어 장기적으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SiC 파워반도체 시장은 2025년 4558억 엔(약 4조3240억 원)에서 2035년 2조9034억 엔(약 27조5457억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며, EV 내 SiC 채용률도 2024년 10%대에서 2035년 5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과 기술·시장 전략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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