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이하 현지시각) 알자지라와 B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머스크가 제기한 비판에 대해 질문을 받고 “모든 조항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조항에는 매우 흡족하다”며 “협상이란 그런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감세 조항과 관련해서는 “우리 역사상 가장 낮은 세율을 실현할 것”이라며 “엄청난 혜택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예산 법안은 총 1000쪽이 넘는 분량으로 구성돼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다수 담겼다. 특히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시행된 감세를 항구화하는 조항, 465억 달러(약 63조2000억원)를 투입한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재건 사업, 이민자 대규모 추방 예산 등이 포함됐다.
또 부채 한도를 4조 달러(약 5432조원) 확대하고 저소득층 대상 공공의료보험 ‘메디케이드’와 식품지원 프로그램 ‘스냅’에 대해 근로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로 인해 수천 명이 기존 복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머스크는 이에 대해 지난 26일 CBS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법안은 적자를 줄이기는커녕 되레 늘리는 내용”이라며 “정부예산 절감기구인 정부효율부가 추진해온 작업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안은 크거나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둘 다 될 수는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붙인 명칭 자체를 꼬집기도 했다.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적극 지원한 핵심 후원자로 지난해 대선 당시 2억5000만 달러(약 3395억원)를 기부하고 유세에 동참했다. 재선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를 정부예산 절감 태스크포스인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임명했으며 머스크는 이후 수차례 백악관 회의에 참석해 감축 대상 계약 발표 등에 관여해 왔다.
그러나 최근 머스크는 정치자금 기부를 줄이겠다고 밝히며 정부효율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내비쳤다. 정부효율부는 지금까지 1750억 달러(약 237조7000억원)의 지출 절감 실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BBC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의 비판에 처음으로 공개 반박한 것은 양측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머스크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은 단 한 표도 주지 않는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라며 예산안 통과를 위해 당내 결속을 거듭 강조했다. 법안은 최근 하원을 가까스로 통과했으며 현재 상원에서 심사 중이다. 공화당은 상원 100석 중 53석을 확보하고 있어 이탈표가 3석 이상일 경우 법안 처리가 어려워진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부채 한도 확대나 복지 축소에 대한 반발이 일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메디케이드 삭감에는 반대한다”고 밝히며 감세 조항이 “중산층을 위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로써 지난해까지만 해도 “행정부의 실세”로 불리던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이 예산 문제를 두고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