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법원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근거로 일괄적인 글로벌 관세 부과할 권한 없어"....트럼프의 관세 부과 권한 첫 제한 결정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국가 비상사태’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이를 근거로 한 관세 조치는 전면 무효라고 판단했다.
29일(이하 현지시각) ABC뉴스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이날 소규모 기업 5곳이 제기한 관세 무효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고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를 “영구히 폐지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일괄적인 글로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이 소송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50여개국 수입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위헌이라는 취지에서 제기됐다. 특히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뒷받침해온 핵심 수단인 관세 부과 권한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제한한 연방 법원의 첫 결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ABC뉴스는 전했다.
원고 측은 “무역적자는 수십 년간 지속돼 왔지만 미국 경제에 실질적인 피해를 준 적은 없다”며 “이는 비상사태로 보기 어렵고 IEEPA가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소장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긴급 상황’은 상상의 산물”이라며 “이는 명백한 권한 남용이자 전례 없는 권력 확대 시도”라고 비판했다.
원고들을 대리한 보수 성향 로펌 자유정의센터의 변호사 제프리 슈왑은 지난 13일 열린 심리에서 “이 사건은 스트라이크존이 어디냐는 문제를 따질 필요조차 없다. 대통령의 조치는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벗어난 폭투”라며 “IEEPA는 대통령에게 이같은 무차별적 관세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제무역법원 재판부는 버락 오바마, 트럼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각각 임명한 세 명의 판사로 구성됐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IEEPA의 입법 취지와 문구 어디에도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괄적인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근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IEEPA 외에 1917년 제정된 ‘적성과의 통상법(Trading with the Enemy Act)’ 사례를 근거로 대통령의 독자적 관세 부과 권한을 주장해왔으나, 이번 판결은 양 법률의 적용 범위를 엄격히 구분하며 IEEPA의 적용 불가를 분명히 했다.
앞서 지난달 플로리다 연방지방법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제기됐으나 담당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권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사건을 국제무역법원으로 이관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전략에 직접적인 제동을 거는 결정으로 해석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에 대한 추가 관세를 예고한 상태이며 하버드대에 대한 30억 달러(약 4조1500억원) 규모의 연방 보조금을 회수하고 이를 직업교육 지원으로 돌리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법원 판결로 이같은 일방적 조치들이 줄줄이 제동에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수입 원자재 비용이 급등해 타격을 입은 제조업체들이며 “대통령의 일방적 조치가 수천 개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한편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중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들을 압박할 주요 카드로 관세를 활용하려던 전략에도 차질을 줄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