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경제 전반을 군수산업 중심으로 재편한 가운데 전쟁 종식 이후에도 이같은 체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화협상에 소극적인 배경에는 전쟁이 러시아 경제의 동력이 됐다는 구조적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며 28일(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전쟁 초기부터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대규모 군수 투자와 병력 확충에 나섰으며 이로 인해 경제 전반이 군사 중심으로 전환됐다. 러시아 정부는 하루 1000명 넘는 신병 모집을 위해 연봉 수준의 계약금까지 지급했고 병력 손실을 만회한 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서부 전선에서 지난 한 달간 260㎢ 이상을 추가 점령하며 재차 진격 중이다.
러시아의 군수산업은 최근 수년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재정 투입으로 24시간 가동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WSJ는 “이같은 투자 덕분에 러시아 내 저소득 지역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이 오히려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알렉산드르 콜리안드르 선임연구원은 “러시아는 군수산업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단기간 내 국방비를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휴전 중재에 소극적인 것도 이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교황 레오 14세와의 면담 후 “푸틴이 전쟁을 종식한 뒤 어떻게 경제를 전환할지에 대한 전략 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최근 소셜미디어에 “푸틴은 미쳐가고 있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가 아니었으면 러시아에 정말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이후다. WSJ는 “종전 이후 수십만의 단기계약 군인들이 민간으로 복귀할 경우, 경기 둔화와 임금 하락이 맞물려 사회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독일 자유대학의 볼로디미르 이셴코 연구원은 “무장한 남성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귀환 병사들을 내치기 위해 강제수용소에 보낸 전례도 있다.
러시아 내에서는 일부 군수업체들이 전쟁 이전 수준의 무기 수출 회복을 모색하고 있으나 WSJ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시장에서 점유율이 하락한 데다 구매국 다수가 러시아에 의존하는 신용구매 방식이라 회복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WSJ는 “러시아 군수산업은 양을 우선시하며 품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미국처럼 민간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간경제는 인력 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고전 중이다. WSJ는 “달걀과 감자값이 오르고 있고 전쟁이 만들어낸 경기부양 효과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전략기술분석센터의 루슬란 푸코프 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생존 위기 없이 방대한 국방 예산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푸틴은 국민 여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