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비 3배 증가, 인공지능·반도체·우주항공 분야 경쟁력 강화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중국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2007년 약 1300억 달러(약 179조원)에 불과했던 중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2022년 7700억 달러(약 1060조6000억원)까지 급증해 같은 기간 4500억 달러(약 619조9000억원)에서 8000억 달러(약 1102조원)로 늘어난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의 배경에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한 후 중국이 기술 자립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5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최고 과학자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중국이 다른 나라에 기술을 구걸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자립을 통해서만 국가 경제 안보를 근본에서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유럽 동맹국들과 손잡고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의 중국 접근을 차단하려 하면서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시 주석은 2023년 "미국이 이끄는 서방 국가들이 우리를 두고 전면 봉쇄, 포위, 억압을 실행하고 있다"면서 "극단 시나리오"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 인공지능부터 원자력까지...전방위 기술 혁신 추진
중국의 기술 자립화 노력은 인공지능부터 원자력·우주항공까지 전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중국 정부 벤처캐피털 펀드가 2000년부터 2024년까지 9600개 인공지능 기업에 약 2000억 달러(약 275조5000억원)를 투자했다. 지방정부 투자기관들도 오픈AI와 구글에 견줄 만한 중국 인공지능 기업인 지푸 AI 같은 신생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의 산업용 로봇 도입 규모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의 산업용 로봇을 들여오고 있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에 설치된 로봇의 4분의 3은 일본이나 독일 등 해외 제조업체 제품이었지만, 2023년까지 중국 로봇 제조업체들이 중국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제조업체 두 곳인 컨템퍼러리 암페렉스 테크놀로지(CATL)와 BYD는 지난 3년간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동시에 두 회사는 연구개발에 총 200억 달러(약 27조500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고 밝혔다. 최근 몇 주 사이에 CATL과 BYD는 각각 전기자동차 충전 시간을 단 5분으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고속충전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분야에서도 선전에 본사를 둔 UB테크 같은 중국 기업들이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같은 미국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UB테크는 최근 몇 년간 3000개가 넘는 협력업체 중 90%가 중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성장하는 자체 협력업체 생태계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원자력 분야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240㎞ 떨어진 싼먼 원자력발전소에서는 2009년 건설이 시작된 최초 두 원자로가 미국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바탕으로 했지만, 새로운 두 원자로는 완전한 중국 기술로 건설됐다. 화룽1호로 알려진 중국 자체 개발 원자로 모델은 약 5∼6년 만에 건설되는 반면, 미국의 최신 웨스팅하우스 원자로는 완공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
선박 건조 분야에서는 해운 정보 제공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중국 조선소들이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53%를 내놨는데, 이는 2002년 8%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미국은 작년 전 세계 상업용 선박 건조량의 0.1%만을 차지했다. 중국의 조선 기술 덕택에 중국은 현재 370척 이상의 함선과 잠수함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우주개발 분야에서도 베이징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년 미국 싱크탱크들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상업용 위성 시스템 금메달 11개 중 중국 기업이 5개를 차지했고, 미국은 4개에 그쳤다. 2014년 중국 국영 과학아카데미 산하 연구소에서 3000만 달러(약 413억원)의 지식재산권 투자로 출범한 창광 위성기술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상업용 원격감지 위성군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궤도에 진입한 117개 위성을 통해 지구상 어느 지점이든 하루에 최대 40회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밝혔다.
◇ 반도체 자립률 급성장에도 경제성장 둔화 우려
2023년 화웨이는 업계 전문가들이 중국 현지 생산이라고 분석하는 첨단 프로세서를 탑재한 고급 스마트폰을 내놔 미국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2022년 출시된 엔비디아 H100 칩보다 더 강력할 것으로 기대되는 새로운 칩 시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칩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공지능 시스템 구축에 꼭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의 자립률이 2021년 11%에서 2027년 82%로 뛸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수입 의존도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전체 수입은 10년 전 약 22%였던 국내총생산 대비 2023년에는 18%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작년에 2조5000억 달러(약 3444조7000억원) 상당의 상품을 들여왔으며, 이 중 1640억 달러(약 226조원)는 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자급자족을 위해 중국은, 세계 인구의 약 17%에 불과하지만, 현재 전 세계 옥수수 비축량의 약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으며, 막대한 양의 석유와 금속을 비축하고 있다. 국방부는 중국이 최근 몇 년 동안 핵탄두 비축량을 세 배로 늘려 600개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기술 투자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재정 낭비와 사기가 정부의 자립을 위한 지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달 정부 지원을 받는 반도체 대기업의 전 회장은 6500만 달러(약 895억원)의 국가 자산을 불법 취득한 혐의로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전기자동차 시장에서는 500개 기업이 지방정부에서 쉽게 자금을 조달하려고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이후 대부분 실패했고, 남은 기업들도 수익성이 없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국은 2031년부터 2040년까지 평균 2.8%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평균 약 6% 성장률과 비교해 크게 둔화된 수치다.
카네기멜런대학교 리 브랜스테터 경제학자는 "중국처럼 넓은 나라라 할지라도 모든 나라에서 자원은 제한된다"면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쓰이면 멀리 보아 생활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