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나노튜브 '발암물질' 지정 후폭풍…규제 확대 우려 현실로
세계시장 50% 이상 장악한 일본 기업들, ELV 지침 개정안에 '촉각'
세계시장 50% 이상 장악한 일본 기업들, ELV 지침 개정안에 '촉각'

7일(현지시각) 닛케이에 따르면 탄소섬유는 도레이, 미쓰비시 케미컬, 데이진 등 일본 기업이 세계 시장의 52%(2024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어, 실제 규제가 적용되면 일본 첨단소재 산업에 큰 타격이 있을 전망이다.
◇ '악마화된 신소재' 탄소나노튜브, 규제의 서막
앞서 탄소나노튜브(CNT)는 1991년 당시 NEC 연구원이었던 메이조대학의 스미오 이지마(飯島澄男) 종신교수가 세계 최초로 발견한 신소재다. 뛰어난 전도성 덕분에 한때 노벨상 유력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이이지마 교수는 "과학이라기보다는 감정론이다. 악당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렸다"고 토로했다. 건강 피해 우려는 CNT가 널리 쓰이는 데 장애가 되었다. 유럽위원회는 2024년 9월 CNT의 한 형태를 '발암 추정 물질'로 분류했으며, 허가 승인율이 5%에 불과해 사실상 사용이 금지됐다.
니폰제온의 아타 마사후미 씨는 EU의 CNT 규제 움직임을 두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규제라 곧 철회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안일한 판단이었다"며 업계의 초기 대응 미흡을 지적한 바 있다.

◇ 자동차 폐기물 규제 강화… 탄소섬유 '유해물질' 지정 움직임
EU는 현재 폐차량 재활용을 규정하는 'ELV(End-of-Life Vehicles) 지침'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EU 입법기관인 유럽의회가 최근 제시한 지침 개정안에 자동차용 탄소섬유를 사용이 대폭 제한되는 유해물질 항목에 추가했다. 해당 개정안이 최종 통과하면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가 사용 규제 대상이 된다.
탄소섬유는 주로 수지를 혼합한 복합재료 형태로 항공기 등에 쓰인다. 폐기할 때 전도성을 가진 섬유가 공중에 떠다니다 기계에 들어가면 합선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섬유가 미세해 피부나 점막에 붙으면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EU가 지적하는 위험 요소다.
현행 ELV 지침은 납, 수은, 카드뮴, 6가크롬을 유해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특정 부품에 한해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자동차와 부품 제조사들은 회사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이들 물질의 사용을 줄여왔다. 탄소섬유가 유해물질 목록에 포함되면 다른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사용 기피 현상이 넓게 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세계시장 절반 장악한 日 기업들…'탈(脫)탄소섬유' 압박 직면
탄소섬유는 철이나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강도가 높아 다양한 산업에서 주목받는다. 시장조사기관 루츠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2024년 탄소섬유 시장 규모는 54억8000만 달러(약 7조6807억 원)이며, 2035년까지 3배가 넘는 170억8000만 달러(약 23조9393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자동차용 탄소섬유는 전체 시장의 10~20%를 차지하며, 특히 전기차(EV) 시장 성장과 함께 수요가 늘고 있다. 주행거리 확보를 위해 배터리 용량이 커지면서 엔진차 이상으로 차체 무게를 줄이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독일 BMW가 양산차 최초로 전기차(EV) 차체에 탄소섬유를 채택한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고급차와 스포츠카를 중심으로 백도어, 보닛, 지붕, 전기차(EV) 배터리 케이스처럼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필요한 부품에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탄소섬유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도레이, 미쓰비시 케미컬 그룹 산하의 미쓰비시 케미컬, 데이진 등 3개사가 2024년 기준 세계 시장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위 탄소섬유 기업인 도레이는 미국 보잉사의 여객기 1차 구조재와 풍력발전 날개용으로 대량 공급 계약을 맺으며 탄소섬유 사업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2024년 3월기 해당 사업 매출은 2905억 엔(약 2조8420억 원), 사업이익은 132억 엔(약 1291억 원)으로 회사 전체 실적의 약 12%를 차지한다. 도레이 측은 유럽 거점을 통해 탄소섬유가 규제안에 포함된 경위를 파악하고 있으며, "개별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탄소섬유와 자동차 업계 단체와 협력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데이진은 자동차용 탄소섬유 사업이 항공기, 풍력발전용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크며, 자동차용 매출의 절반 이상이 유럽 시장에서 나온다. 사용 제한이 결정되면, 제품 구성이나 판매 지역 변경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 규제 확산·장기화 가능성… 업계, 공동 대응 및 로비 고심
ELV 지침 개정안은 유럽의회, 유럽위원회 등 EU 3개 기관이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며, 정식으로 발효하면 2029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탄소섬유 업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종안에서 해당 내용이 빠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업계는 이번 규제 움직임이 자동차를 넘어 다른 제품으로 번질 가능성을 경계한다. 과거 EU는 ELV 지침에서 특정 물질을 유해물질로 지정한 뒤, 전자제품에서도 해당 물질의 사용을 원칙으로 금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풍력발전 날개나 항공기 등 탄소섬유가 대량 사용되는 다른 제품군으로 규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EU 행정법 전문가인 독일 노아(Noerr) 법률사무소의 토마스 클린트 씨는 "환경 정책과 산업 정책에서 탄소섬유 취급을 둘러싼 격렬한 논의가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면서, "밀실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문서와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고 외부의 적극적인 정보 전달과 로비 활동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