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경제 성장에 제한적 긍정 효과"...연간 800억 유로 증가 예상, GDP 0.5% 수준 확대
자금 조달과 지출처 놓고 프랑스-독일 충돌
자금 조달과 지출처 놓고 프랑스-독일 충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NATO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압박하고 방위공약 이행에 조건을 달면서 유럽연합(EU)이 자체 국방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입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 방위의무 이행을 GDP 2% 국방비 지출 목표 달성과 연계시키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국가들에 대한 보호를 재고할 수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EU는 국방비 증액에 합의했으나, 자금 조달 방법과 지출 대상을 놓고 회원국 간 첨예한 의견 대립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각) 발표된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2027년까지 연간 국방비 지출을 약 800억 유로(840억 달러)씩 점진적으로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EU 국내총생산(GDP)의 약 0.5%에 해당하는 규모다. 골드만삭스 리서치의 경제학자 니클라스 가르나트와 필리포 타데이는 이 보고서에서 "국방비 지출 증가가 GDP 성장에 긍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로 지역의 국방비는 2024년 GDP의 1.8%를 차지했으며, 골드만삭스 리서치는 2027년까지 이 비율이 2.4%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국방에 대한 추가 지출이 2년 동안 0.5의 재정 승수를 가질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국방에 100유로를 지출할 때마다 GDP가 약 50유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 독일, 국방비 예산 통제 면제와 5000억 유로 인프라 기금 배정 검토
주목할 만한 변화는 독일에서 나타나고 있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차기 독일 정부는 최근 국방비 지출을 예산 통제 조치에서 제외하고, 인프라 기금에 5000억 유로를 할당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이 시행된다면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예상보다 빠른 GDP 성장률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비 지출의 경제적 영향은 지출 유형과 수입 또는 현지 생산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보고서는 또한 "군수품 수입이 점차 감소하고 국내 제품으로 대체되며, 초기에는 장비 및 인프라에 대한 지출 증가가 집중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 1500억 유로 방위 산업 투자 두고 프랑스-독일 갈등 심화
이런 가운데 국방비 지출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놓고 EU 내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EU의 방위 산업에 1500억 유로를 투입하는 제안을 두고 프랑스와 독일 간 갈등이 표면화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주 EU 정상회담에서 "이 이니셔티브가 영국, 노르웨이, 스위스, 터키와 같이 EU에 속하지 않았지만 긴밀하게 협력하는 국가들에게도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자체 방위 산업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다시 한번 유럽 외부에서 만들어진 완제품 무기에 돈을 쓰는 일은 피해야 한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유럽 내 우수한 기업가와 방산 기업들을 찾아 지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한 각 EU 회원국의 군사 장비 구매 계획을 재검토해 "유럽에서 생산된 무기를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브뤼셀 외교가 우려... "15억 유로도 집행 어려웠는데 1500억 유로를?"
브뤼셀 외교관들은 1500억 유로 규모의 이 계획이 15억 유로 규모의 국방 기금인 유럽방위산업계획(European Defence Industry Programme)에 대한 합의를 1년 이상 지연시킨 것과 같은 주장으로 인해 무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시행하려는 노력은 파리가 EU 외 부품에 지출할 수 있는 비율에 대한 상한선과 제3국의 지적재산권(IP) 보호를 받는 제품에 대한 금지를 요구한 후 중단된 바 있다.
브뤼셀의 한 EU 외교관은 "우리는 완벽함이 아니라 속도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며 "그러나 프랑스의 반대를 넘어 15억 유로를 집행하는 것에 주저함이 있었다면, 어떻게 1500억 유로를 집행할 것으로 예상되는가?"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 유럽 방위 자금 조달 방안... "ESM, EIB 또는 새로운 시설 활용 가능"
국방비 증액을 위한 자금 조달 방법에 관해서도 다양한 옵션이 검토되고 있다. 타데이 경제학자는 지난 2일 발표한 별도 연구 보고서에서 "GDP의 2.5%라는 국방비 지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로 지역은 매년 GDP의 0.6%까지 지출을 추가로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요 자금 조달 방안으로는 ▲국가 또는 EU 차원에서 더 많은 부채 발행 ▲유럽안정기구(ESM) 또는 유럽투자은행(EIB)과 같은 기존 대출 프로그램 활용 ▲기존 코로나 팬데믹 차입 프로그램(NGEU)의 용도 변경 ▲국방 차입 전용의 별도 프로그램 신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옵션에는 각각 제한사항이 있다. 예를 들어, 유로 지역 회원국만 ESM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ESM은 국내 채권에서 초국가적 채권으로 발행을 일시적으로만 전환할 수 있다. 반면 EU의 부채는 안정적인 자금을 제공할 수 있지만, 새로운 자금 조달 시설을 설립하는 데는 설계에서 구현까지 약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 리서치팀은 "EU가 국가 부채, NGEU 및 새로운 자금 조달 시설을 함께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며, 국가 부채와 여분의 NGEU 재정 능력의 용도 변경이 결합되어 2026년까지 군사 지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유럽 방위 산업 현황 ... "국내 소싱 비중 높아"
유럽의 국방 관련 생산과 소비 현황을 살펴보면, 장비에 대한 지출이 최근 다른 국방 분야보다 더 많이 증가해 2014년 15%에서 작년 NATO 유럽 회원국의 지출 비율이 33%에 달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직후 비유럽연합(非)공급업체로부터 상당한 양의 군사 장비를 구매했다. 그러나 유럽 방위 물자의 상당 부분은 역사적으로 국내 기업, 특히 더 큰 EU 회원국에서 구매했다. 2005년에서 2022년 사이 국내 평균 소싱 점유율은 프랑스에서 약 90%, 독일에서 80%, 이탈리아에서 70%였다.
세계 무기 생산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에서 2016년 사이 감소했으나 이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장 가격에 따르면 EU 제조업체들은 전 세계적인 무기 생산 급증에 동참했으며 이제 미국 제조업체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
◇ EU 집행위, 2주 내 세부 제안서 마련 예정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대공 및 미사일 방어, 포병, 드론 등 7개 핵심 역량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대출이 "회원국들이 수요를 모으고 함께 구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우크라이나에 즉각적인 군사 장비"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10일 안에 세부 제안서의 초안을 작성해야 할 고위 위원회 관계자들은 파리, 베를린 및 기타 수도와 긴밀히 연락하여 회원국의 승인을 위해 제안될 때 차단되지 않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EU 순환 의장국인 폴란드는 신속한 합의 도출을 위한 중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