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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전략적 딜레마...복지 축소해 군사력 강화해야 하나?

세계 인구 7%가 글로벌 사회 지출 50% 차지, 트럼프의 무역전쟁과 나토 약화로 안보 위기 직면
2022년 1월 25일에 촬영된 이 사진에서 미국과 EU 국기 앞에 체스 말이 보인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22년 1월 25일에 촬영된 이 사진에서 미국과 EU 국기 앞에 체스 말이 보인다. 사진=로이터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 고립주의 강화로 유럽은 복지와 안보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이 복지국가 모델을 축소하고 국방비를 증액해야 하는 필요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서방 행보가 초래한 경제적·안보적 위기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지적했듯이 유럽은 전 세계 인구의 7%만 차지하는 소규모 대륙이지만, 세계 경제 생산량의 4분의 1(25%)을 만들어내면서 전 세계 사회복지 지출의 절반(50%)을 사용하는 불균형적 상황에 처해 있다. FT는 "유럽의 복지국가는 20세기 후반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된 것으로, 나토(NATO)를 통한 미국의 암묵적 보조금이 유럽 정부들이 복지에 더 많은 예산을 쓸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복지 지출 부담은 인구 고령화로 더욱 가중되고 있다. 1972년 영국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3%였던 것에 비해 현재는 약 20%로 증가했으며, 프랑스도 비슷한 수준이고 독일은 이보다 더 높다. FT는 "유럽이 알고 있는 복지국가는 어느 정도 후퇴해야 한다. 그것은 100세까지 사는 것이 진부한 세상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기존 10%에 더해 추가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를 중단했다. FT는 "이는 자유롭고 예측 가능하며, 규칙에 기반한 무역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며, 미국이 핵심 동맹국과의 약속을 포기하고 과거의 적(러시아)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에 대해 "솔직히 말하자면, 유럽연합은 미국을 망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그 목적"이라며, "그들은 우리의 차를 가져가지 않고, 우리의 농산물을 가져가지 않으며, 거의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모든 것을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덴마크 경제학자 예스퍼 랑비드는 이런 트럼프의 주장이 상품 무역만 보고 서비스 무역과 자본·노동 소득은 무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랑비드에 따르면, 미국이 유로존에 대한 서비스 수출 수입과 자본·노동 임금 수익이 상품 적자를 상쇄해 실제 미국-유로존 간 경상수지는 균형에 가깝다.

FT가 유럽중앙은행(ECB)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유로존과 미국 간 경상수지는 변동성을 보여왔다. 특히 2022년부터는 유로존의 대미 경상수지가 급격히 감소하여 적자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미국 경제의 상대적 강세 등 여러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모리스 옵스펠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는 "미국의 무역 적자는 무역 상대국의 속임수 때문이 아니라 소득에 대한 과도한 지출, 특히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달하는 막대한 연방 재정 적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트럼프의 2017년 감세안을 영구화하려는 계획은 이 적자가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FT가 국제통화기금, 미국 인구조사국, 미국 경제분석국(BEA)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G20 국가들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미국의 해당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2023년 대미 상품 수출이 GDP의 27%와 21%를 차지했다. 이는 트럼프의 25% 관세 부과가 이들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으로, EU의 대미(對美) 상품 수출은 EU 전체 GDP의 2.9%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이 EU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경제 전반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FT는 이러한 조치를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고, 경제 전쟁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는 관세 부과가 경제적 실익보다는 정치적 목적이나 감정적 대응에 기반한 조치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중단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차기 독일 총리는 "그의 절대적 우선순위는 가능한 한 빨리 유럽을 강화하여 단계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미국 내 정치적 지형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CBS와 유고브(YouGov)가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러시아를 우호적 국가 또는 동맹국으로 보는 비율이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정치에서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당파적으로 극명하게 양극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EU와 영국을 합친 인구는 러시아의 3.6배, GDP는 구매력 기준으로 4.7배 크다. FT는 "문제는 인적·경제적 자원 부족이 아니라 유럽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중요한 군사 장비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안보 강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로는 압수된 2000억 유로 이상의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로 이전하는 것을 가속화하고, 나토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약화된 상황에서 대규모 방위력 증강을 추진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FT는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국과 종속국들을 상대로 경제적, 정치적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미국과 가치를 공유했던 국가들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미국에도 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변화는 유럽과 미국을 더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유럽이 더 군사화되고 덜 복지주의적이 되면서, 두 대륙은 서로를 닮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FT는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럽이 자체 방어 능력을 키우고 자율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럽의 사회 모델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유럽 시민들의 삶의 질과 사회 안전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FT는 전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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