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엔비디아 칩 2000개로 1만개 성능 구현해 주목
자산 80억 달러 헤지펀드서 출발, 저가 전략으로 시장 공략
자산 80억 달러 헤지펀드서 출발, 저가 전략으로 시장 공략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DeepSeek)가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에도 불구하고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AI 모델을 개발해 실리콘밸리를 긴장시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딥시크가 지난 20일 공개한 복잡한 문제 해결용 AI 모델 'R1'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연구진이 운영하는 챗봇 성능 평가 플랫폼 '챗봇 아레나'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구글의 제미나이(Gemini)에 이어 일론 머스크의 엑스AI(xAI)가 개발한 그록(Grok)과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를 제쳤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벤처캐피털 앤드리슨호로위츠의 창업자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자문을 맡았던 마크 앤드리슨은 자신의 엑스(X) 계정에서 "딥시크 R1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혁신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딥시크는 최신 모델 개발에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000개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유사한 성능의 AI 모델 훈련에 통상 1만개 이상의 GPU가 필요한 것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개발 비용도 560만 달러(약 80억 원)으로, AI 기업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밝힌 일반적인 AI 모델 개발 비용인 10억 달러(약 1조4300억 원)에서 100억 달러(약 14조3000억 원)의 1% 수준에 그쳤다.
자산 규모 80억 달러(약 11조4600억 원)의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에서 출발한 딥시크는 2023년 초 파격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기존 AI 서비스 대비 4분의 1 수준의 요금을 책정해 중국 AI 업계에 가격 경쟁을 촉발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공동창업자 앤서니 푸는 "오픈AI의 모델이 성능면에서는 최고지만, 불필요한 용량에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 앤트로픽의 클로드에서 딥시크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포지트론의 배럿 우드사이드 공동창업자는 "딥시크의 오픈소스 모델은 정말 놀랍다"며 "유일한 단점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검열이 일부 적용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딥시크의 주력 모델 V3는 중국과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민감한 정치적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플라이어는 2019년부터 AI 연구를 위한 GPU 클러스터 구축에 착수했다. WSJ에 따르면 이 회사는 금융 사업에서 창출한 자금으로 1만개의 엔비디아 GPU로 구성된 대규모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2022년 말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했을 당시 이 정도 규모의 컴퓨팅 인프라를 보유한 중국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WSJ는 전했다.
딥시크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개발 과정에서 통상적인 '지도 미세 조정' 단계를 생략하는 혁신적 접근법을 택했다. 지도 미세 조정은 인간 전문가의 지식을 AI에 주입하는 과정으로, 대부분의 AI 기업들이 필수 단계로 여긴다. 대신 딥시크는 시행착오를 통한 '강화학습' 방식에 집중했다.
엔비디아의 짐 팬 선임 연구 과학자는 "딥시크의 접근 방식은 인간 그랜드마스터를 모방하지 않고도 체스를 정복한 초기 AI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혁신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미국 AI 전문가들은 딥시크가 공개한 것 이상의 컴퓨팅 파워를 확보했을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러한 성과는 중국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량원펑(38)의 리더십이 이끌었다. 1985년생인 량원펑은 중국 광둥성 출신으로 저장대학교에서 머신 비전을 전공했다. 2015년 대학 동기들과 함께 설립한 하이플라이어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딥러닝을 컴퓨터 거래에 도입한 회사다. 량원펑은 2019년 연설에서 "인간의 투자 결정은 예술이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은 과학적으로 최적의 솔루션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오픈AI의 잭 카스 전 임원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딥시크가 이룬 발전은 자원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
한편, 량원펑은 지난 20일 리창 중국 총리와의 면담에서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이 여전히 중국 AI 기업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토로했다고 WSJ는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