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에서 한국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전체 학령기 교육과정과 거의 일치하는 K-12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인한 청소년의 정신건강 악화와 학업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나온 조치로, 현재 7개 주가 이미 관련 법안을 통과했고, 14개 주에서 법안을 발의했으며, 6개 주에서는 시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9월 29일(현지시각)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플로리다, 인디애나, 루이지애나, 미네소타,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에서 이미 법안이 통과되었다. 또한, 예를 들어, 플로리다는 K-12 교실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학군 Wi-Fi에 연결된 모든 장치의 소셜 미디어 접근을 차단하는 법안을 2024년 7월부터 시행 중이다.
휴대폰 금지 정책은 청소년의 정신건강 개선과 학업 성취도 향상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많은 교사는 수업 중 학생의 휴대폰 사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과도한 휴대폰 사용은 집중력 저하, 학업 성취도 하락뿐 아니라 사이버 괴롭힘, 우울증, 불안 증가 등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2023년 실시된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51%가 하루에 최소 4시간 동안 소셜 미디어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2023년 조사에서 고등학생 16%가 전자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이 비율은 LGBT+ 청소년(25%)과 여성(21%)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 연구에서는 휴대폰 금지가 학생의 정신건강과 학업 성취도를 개선하고 괴롭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다른 연구들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책 시행 과정에 교사들의 업무 부담 증가, 의료적 목적으로 휴대폰이 필요한 학생들에 대한 예외 처리, 형평성 문제 등 여러 가지 도전 과제들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 정책은 미국 경제와 관련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의 휴대폰 사용 제한은 단기적으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기업의 매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e마켓터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12~17세 청소년 중 95.1%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일일 평균 사용 시간은 4시간 16분에 달한다. 이는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의 약 8%를 차지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 기업들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퓨 리서치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의 95%가 유튜브를, 62%가 틱톡을, 59%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의 광고 수익 중 상당 부분이 청소년 사용자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 정책이 긍정적인 경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교육 기술 산업은 성장의 기회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에드테크 시장 규모는 2022년 1239억 달러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13.6% 성장해 3429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학교 내 휴대폰 사용 제한으로 인해 교육용 태블릿, 학습 관리 시스템, 온라인 학습 플랫폼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학생들의 집중력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미래 노동력의 질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휴대폰 금지가 학생 집중력과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한 연구에서는 휴대폰을 금지한 학교의 시험 점수가 6.41% 향상되었다는 결과가 있었다. 특히,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게 이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런 교육의 질 향상은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인한 노동 생산성 증가는 2040년까지 미국 GDP를 최대 3.3%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휴대폰 사용 제한이 학업 성취도 향상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책의 확산은 디지털 기술과 교육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강화와 같은 보완책도 함께 모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주는 휴대폰 금지와 함께 6학년부터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의무화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역시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에 대한 정책적 접근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2022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만 10~19세)의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35.2%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치로, 3명 중 1명 이상의 청소년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비율은 전년 대비 1.5%p 증가한 것으로,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금지보다 디지털 기기의 적절한 활용법을 가르치고, 학생들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키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것이다. 휴대폰 금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기술의 혜택은 누리면서도 그것에 종속되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앞으로 이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관찰하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교육과 성장이라는 복잡한 과제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토론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