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으로 춤이 번지자, 공연장은 소시민들의 마당이 되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공연은 고난도 기교보다 움직임을 매개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서클댄스에서 원은 단순한 대형이 아니다. 누구나 손을 맞잡으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누구도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고, 자기 모습 그대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촘촘한 연결망이 깔려있어서 스마트폰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로봇은 인간의 움직임을 대신하지만, 연결이 많아질수록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귀해지고 있다. 함께 춤춘다고 해서 공동체가 완성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서클댄스, 그 생명의 내밀한 울림으로 만들어지는 연대는 지속 가능성을 보인다.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 : 박광수 노래, 하혜석 안무의 작품으로 내밀하고 서정적인 장면을 형성한다. 원의 중앙에 선 박성율의 ‘스스로춤’을 펼쳐 보이고, 서클 댄서들은 개화하며 바람에 흔들리듯 원을 이루며 움직인다. 중앙의 독립적인 신체 표현과 주변의 집단적 움직임이 한 화면 안에서 대비되면서,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의 호흡이 서로를 비춘다. 꽃은 인간의 삶이고 바람은 흘러가는 시간이다. 무궁한 꽃이 없듯 삶도 유한하다. 원의 움직임은 저마다 다른 생명을 만나 순환을 이룬다. 꽃은 지기 때문에 피어 있는 순간이 소중하고, 만남은 유한하기에 손잡는 사실이 귀하다. 이 춤은 함께 움직이는 몸으로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원은 생명의 유한함을 둘러싼 순환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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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Weaving Our Lives' : 숲의 나무와 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태계를 이루듯 서로의 삶을 엮어 생명의 그물망을 만든다. 미국의 알렉사 선샤인 로즈의 노래에 독일의 나니 클로케 안무의 작품은 무대 양옆과 뒤쪽에 세 개의 원으로 구성된다. 중앙에는 박성율의 ‘스스로춤’이 펼쳐지고, 세 원의 움직임은 각자의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에게 반응하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정적인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세 개의 원으로 확장된다. 분리된 움직임들이 서로 연결되며 형성하는 관계망이다. 중심과 주변,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호응하며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인간도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생명의 그물망은 모두가 같아질 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맺을 때 완성된다.
'자유' : 하덕규의 노래에 하혜석이 안무한 작품이다. 앞선 두 작품에서 관객이 무대 위의 원을 바라보았다면, 하혜석이 관객에게 서클댄스를 소개하고 무대로 초대하자 관람의 경계가 흔들린다. 조심스럽던 사람들이 하나둘 춤에 합류하고, 함께 노래하며 공간을 채운다. 자유는 무용수의 표현력에만 머물지 않고 관객이 몸으로 경험하는 선택이 된다. 참여를 주저하는 관객에게도 자유가 보장된다. 서클댄스는 완벽한 동작이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원 안에 들어와 다른 사람들과 움직이면 된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고 생명의 그물망을 완성한다. 이 작품에서 자유는 관념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경험하는 살아있는 기쁨이 된다.
'La Vida Es Un Carnaval' : 앞선 작품들의 서정성과 성찰을 축제의 에너지로 전환한다. 쿠바의 가수 셀리아 크루스의 노래가 퍼지자, 공연장은 축제의 마당으로 변한다. 하혜석의 안내에 따라 서클 댄서와 관객이 작은 원들을 만들고, 원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면서 무대는 역동적인 공동의 마당이 된다. 서로 다른 세대가 손을 맞잡고 같은 음악에 반응한다. 일곱 살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웃고 움직이며 공동체를 배운다. 그들은 슬프고 고단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살아 있다는 기쁨을 나누는 춤을 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어도 괜찮다는 감각, 나의 존재가 환영받는다는 경험. 서클댄스는 그 기쁨을 온몸으로 나누는 살아 숨 쉬는 마당이다. 첫 작품의 원이 생명의 유한함을 사유하게 하고, 두 번째 원들이 관계의 연결망을 보여주며, 세 번째 원이 관객의 참여로 열렸다면, 네 번째 원은 세대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공간이 된다. 축제의 활기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바로 해소하지는 않는다. 장면의 성취는 차이의 해소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데 있다.
'Wayfaring Stranger'는 축제의 외향적 에너지를 내면의 성찰로 되돌린다. 내면의 불꽃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타메르 제이니올루 슈테허의 연주곡에 김기선이 재연출한 작품은 앞선 네 작품의 의미를 하나로 모은다. 참여자들은 하나의 동심원을 이루고, 잠시 눈을 감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핀 뒤 옆 사람과 악수하거나 포옹한다. 앞선 작품들이 중앙에서 주변으로, 여러 원에서 관객으로, 개인에서 세대로 움직임을 확장했다면, 이 작품은 공동의 경험을 각자의 내면으로 가져간다. 손을 맞잡는 행위는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신의 감각을 돌아보게 된다. 다섯 작품은 고요함과 확장, 참여와 축제, 성찰이라는 서로 다른 정조를 거치며 하나의 순환적 서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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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김기인춤문화재단의 김기선 이사장은 모두의 내면에 춤이 있다고 한다. 사회적·이념적 제약 속에서 잊고 지내던 내면의 지혜와 생명의 불꽃을 되찾고, 그것을 다른 생명과 나눌 때 춤은 온전해진다고 말한다. 그녀는 서클댄스를 통해 내면의 불꽃을 깨우고 온 세계가 하나의 생명으로 박동하는 세상을 꿈꾼다. 하혜석은 서클댄스의 과정을 'Inside Out, Outside In',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의 순환으로 안내한다. 자기 내면에서 움직임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눈 뒤, 그 경험을 다시 자기 삶으로 가져온다. 김기선과 하혜석은 서클댄스를 키워온 파종자들이다.
서클댄스의 미학과 가치는 움직임의 난도보다 서로의 속도를 살피고 차이를 존중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으며, 신체 활동과 정신적 성찰, 즐거움과 소속감을 경험하는 계기가 된다. 진정한 공동체는 원을 이루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참여와 거절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연에서 형성된 유대가 일상의 지속적인 관계와 지역 공동체로 이어질 때 의미가 깊어진다. 로봇의 시대에 서클댄스는 타인의 삶에 응답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할 수 있는지를 물으며, 그 완성은 무대 위에서 손을 잡는 순간을 넘어 공연이 끝난 뒤에도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일상의 실천에서 이루어진다.
로봇의 시대, 다시 마당을 연다. 더 많이 연결되는 것과 더 깊이 연결되는 것은 다르다.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으며 춤출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마음에 닿는다. '생명의 그물망, 춤추는 서울'은 김기선의 철학이 춤의 내면적 근원을 일깨우고, 박성율의 ‘스스로춤’이 그 내면의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다면, 하혜석의 안내를 통해 춤의 내면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서로를 연결하고, 함께 살아 숨 쉬는 에너지로 확장한다. 기술이 세상을 연결하는 시대, 현대인은 춤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감각을 회복한다.
SDP 국제페스티벌이 젊은 안무가들의 개성과 독창적인 춤을 겨루고, 국제적인 교류와 초청으로 이어지는 무대였다면, 하혜석은 이날 한국팀의 초청으로 경쟁을 넘어 함께 어우러지는 커뮤니티댄스의 가치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힐링의 무대로 펼쳐 보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커뮤니티댄스 부문 예술감독상을 수상했다. 그것은 전통 마당놀이의 재현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마당의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 되살리는 일이었다. 서로 다른 몸짓과 마음이 춤으로 만나 공동체를 이루는 순간, 마당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연결과 치유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로봇의 시대에도 무용수가 춤추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은 혼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움직임에 응답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손은 이어져 있었다. 하나의 원 안에서 서로는 온몸으로 느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함께할 때 비로소 더 큰 생명이 된다는 것을. 춤은 끝나도 연결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 그 원을 일상으로 이어가는 것은 현대인의 몫이다. 오늘,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함께 웃고, 함께 움직이고, 함께 춤추는 것. 그렇게 로봇의 시대에,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마당이 다시 열린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SDP 국제페스티벌 조직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