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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뒤가 더 위험하다…폭염·열대야 부르는 한반도 ‘이중열돔’

장마 뒤 고온다습한 공기 유입…폭염·열대야 장기화 우려
폭염 적고 열대야 없던 6월은 여름 약화 아닌 기압 배치의 착시
육지는 잠시 덜 달아올랐지만 한반도 주변 바다는 이미 고수온
장마 뒤 한반도 상공에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겹치는 ‘이중 열돔’ 개념도. 비가 그친 뒤 고온다습한 공기와 상층 고기압이 열을 가두면 폭염과 열대야가 길어질 수 있다. 사진=AI 생성이미지 확대보기
장마 뒤 한반도 상공에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겹치는 ‘이중 열돔’ 개념도. 비가 그친 뒤 고온다습한 공기와 상층 고기압이 열을 가두면 폭염과 열대야가 길어질 수 있다. 사진=AI 생성
공기가 바뀌었다.
며칠 전까지 밤바람은 비교적 가벼웠다. 창문을 열면 선선한 공기가 들어왔고, 에어컨 없이 잠드는 집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장마가 올라온 뒤 한반도의 여름은 빠르게 성질을 바꾸고 있다. 낮 기온은 다시 오르고, 공기 속 수증기량은 늘었다. 같은 30도 안팎의 기온도 전보다 더 무겁게 몸에 감긴다.

더위가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기상 구조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6월 말 한반도는 잠시 예외 구간에 있었다.

북쪽 대기 흐름이 한반도 상층에 비교적 차고 건조한 공기를 밀어 넣었고,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은 평년보다 늦어졌다. 장마를 끌어올리는 고온다습한 남쪽 공기가 본격적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낮에는 더웠지만 밤공기는 덜 끈적했다.

그 공백이 끝나고 있다.

정체전선이 북상하고,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남쪽의 습한 공기가 한반도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여름의 성질은 달라진다.
습도는 체감온도를 끌어올린다. 밤에는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춘다. 여기에 장마 뒤 강한 햇볕과 상층 티베트고기압까지 겹치면 한반도는 열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조에 놓인다.

비가 그친 뒤가 더 위험할 수 있다.

갑자기 더워진 것이 아니라 막혀 있던 여름이 열린다


올해 6월의 날씨는 시민들에게 낯설었다.

기온이 낮았던 것은 아니다. 6월 전국 평균기온은 22.2℃로 평년보다 0.8℃ 높았다. 그러나 폭염일수는 0.6일로 평년 수준에 그쳤고, 전국 열대야는 발생하지 않았다. 강수량은 95.4㎜, 강수일수는 6.9일로 평년보다 적었다. 숫자는 이미 여름이었지만 체감은 달랐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은 습도였다.

여름 더위는 기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30도라도 건조한 30도와 습한 30도는 전혀 다르다. 공기 속 수증기량이 적으면 땀이 마르며 몸의 열을 빼앗아간다.

반대로 습한 남풍이 들어오면 땀은 마르지 않는다. 체온을 낮추는 몸의 냉각 장치가 둔해지고, 실제 기온보다 훨씬 무겁게 더위를 느낀다.

6월 말 한반도는 이 지점에서 예년과 달랐다.

바렌츠해와 북시베리아 부근의 블로킹 영향으로 한반도 상층에는 찬 기압골이 자주 들어왔다.

북태평양고기압은 한반도 쪽으로 충분히 확장하지 못했다. 정체전선도 일본 남쪽 해상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막히면서 한반도에는 덜 끈적한 여름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여름의 약화가 아니었다. 막혀 있던 여름의 입구가 늦게 열린 것이다.

장마가 시작되고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권이 북쪽으로 올라오면 한반도 공기의 성질은 빠르게 바뀐다. 기온보다 먼저 습도가 올라간다.

시민들이 느끼는 “갑자기 더워졌다”는 체감은 이 변화에서 시작된다.

바렌츠해·북시베리아 부근 블로킹과 열대 대류활동 변화가 한반도 주변 기압 배치에 미친 영향을 나타낸 모식도. 북쪽 찬 공기 유입과 북태평양고기압 확장 지연이 겹치면서 정체전선은 일본 남쪽에 머물렀고, 한반도에는 6월 말까지 덜 끈적한 공기가 이어졌다. 사진=기상청이미지 확대보기
바렌츠해·북시베리아 부근 블로킹과 열대 대류활동 변화가 한반도 주변 기압 배치에 미친 영향을 나타낸 모식도. 북쪽 찬 공기 유입과 북태평양고기압 확장 지연이 겹치면서 정체전선은 일본 남쪽에 머물렀고, 한반도에는 6월 말까지 덜 끈적한 공기가 이어졌다. 사진=기상청


선선했던 6월은 방심의 근거가 아니다


6월 말의 선선함은 반가웠다.

낮에는 30도 안팎까지 올랐지만 아침저녁 공기는 가벼웠다. 밤에는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왔다. 장마철 특유의 눅눅한 공기가 늦어지면서 시민들의 체감도 예년 6월 말과 달랐다.

그러나 이 기억이 올여름의 기준이 되면 위험하다.

올해 장마는 제주와 남부지방이 6월 30일, 중부지방이 7월 1일 시작됐다. 평년보다 제주 11일, 남부 7일, 중부 6일 늦었다. 장마가 늦었다는 것은 여름이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이 지연됐고, 정체전선의 북상이 늦어진 결과다.

올해 장마는 제주와 남부지방에서 6월 30일, 중부지방에서 7월 1일 시작됐다. 평년보다 늦게 북상한 정체전선은 6월 말까지 한반도에 덜 끈적한 공기를 남겼지만, 장마 이후에는 고온다습한 공기 유입과 폭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올해 장마는 제주와 남부지방에서 6월 30일, 중부지방에서 7월 1일 시작됐다. 평년보다 늦게 북상한 정체전선은 6월 말까지 한반도에 덜 끈적한 공기를 남겼지만, 장마 이후에는 고온다습한 공기 유입과 폭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늦게 온 장마는 두 가지 위험을 남긴다.

첫째는 짧은 시간 강한 비다. 정체전선이 뒤늦게 북상하면 좁은 지역에 많은 비가 집중될 수 있다.

둘째는 장마 뒤 폭염이다. 비구름이 빠져나가고 햇볕이 강해지면 지표는 빠르게 달아오른다. 습한 공기가 남아 있으면 밤에도 열이 식지 않는다.

장마는 여름을 식히는 장치가 아니다.

한때 비가 기온을 낮출 수는 있다. 그러나 장마 뒤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를 덮고, 남쪽 바다에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계속 유입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가 그친 자리를 열과 습기가 채운다. 그때부터 더위는 낮의 문제가 아니라 밤까지 이어지는 문제가 된다.

육지는 잠시 덜 달아올랐지만 바다는 이미 뜨거웠다


올해 6월 한반도 육지의 체감은 비교적 덜 끈적했다.

하지만 바다는 달랐다. 기상청에 따르면 6월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평균 해수면 온도는 20.9℃로 작년보다 1.3℃ 높았다. 최근 10년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동해와 남해의 수온 상승도 뚜렷했다.

육지는 잠시 예외 구간에 있었지만, 바다는 이미 여름을 앞서가고 있었다.

5월 해수면 온도 편차 분포도. 한반도 주변 해역과 북서태평양 곳곳에서 평년보다 높은 수온이 나타나며, 6월 들어서도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고수온 흐름이 이어졌다. 붉은색은 평년보다 높은 수온, 파란색은 낮은 수온을 뜻한다. 사진=기상청·NOAA이미지 확대보기
5월 해수면 온도 편차 분포도. 한반도 주변 해역과 북서태평양 곳곳에서 평년보다 높은 수온이 나타나며, 6월 들어서도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고수온 흐름이 이어졌다. 붉은색은 평년보다 높은 수온, 파란색은 낮은 수온을 뜻한다. 사진=기상청·NOAA


이 차이가 중요하다.

해수면 온도는 장마 뒤 더위의 연료다. 바다가 따뜻하면 대기로 공급되는 열과 수증기가 늘어난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 많은 수증기를 품고 한반도에 도착한다. 이 수증기는 낮에는 체감온도를 끌어올리고, 밤에는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폭염이 열대야로 이어지는 길이 여기서 열린다.

해수면 상승과 해수면 온도 상승도 구분해야 한다. 해수면 상승은 연안 침수와 폭풍해일, 해안 재난 위험을 키우는 문제다. 장마 뒤 폭염을 설명하는 직접 변수는 해수면 높이가 아니라 해수면 온도다.

바다가 뜨거울수록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고, 습한 더위는 오래 남는다.

기상청의 여름 전망도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북인도양과 북태평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는 우리나라 동쪽의 고기압성 순환을 강화할 수 있다.

이 경우 한반도에는 고온다습한 남풍이 유입되고, 상층 고기압성 순환이 강화되면 강한 일사와 단열승온 효과까지 더해진다.

7월과 8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가능성이 제시된 이유다.

아래는 습한 공기, 위는 뜨거운 뚜껑


장마 뒤 폭염은 단순히 햇볕이 세서 생기지 않는다.

폭염이 오래가려면 구조가 필요하다. 하층에는 덥고 습한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 상층에서는 고기압이 대기를 누르며 구름 발달을 막아야 한다. 지표는 햇볕을 받아 달아오르고, 밤에는 열이 충분히 빠져나가지 못해야 한다.

여름 한반도에서 이 구조를 만드는 대표적 조합이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은 남쪽 바다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한반도로 밀어 올린다. 티베트고기압은 상층에서 뜨거운 공기덩어리를 덮는다. 아래에서는 습기가 들어오고, 위에서는 대기가 눌린다. 열은 쌓이고 구름은 줄어든다. 흔히 말하는 ‘이중 열돔’이다.

이중 열돔은 한반도를 거대한 찜통처럼 만든다.

낮에는 강한 햇볕이 지표와 건물을 달군다. 밤에는 습한 공기와 도시 표면에 저장된 열이 기온 하강을 막는다. 열대야는 다음 날 폭염의 출발선을 높인다. 하루의 더위가 그날 밤 끝나지 않고 다음 날로 넘어가는 셈이다.

그래서 40도라는 숫자만 볼 일이 아니다.

한국 여름의 더 큰 위험은 식지 않는 밤이다. 습도가 높고 바람이 약한 밤에는 체온 회복이 어렵다. 노인, 영유아, 만성질환자, 야외 노동자, 냉방 취약가구는 열대야가 길어질수록 위험이 커진다.

폭염은 낮의 기상 현상을 넘어 밤의 보건 재난으로 이어진다.

예보 불신과 폭염 위험은 다른 문제다


기상청 예보를 믿지 못하겠다는 시민들은 적지 않다.

특히 장마철 비 예보는 체감 불신이 크다. 비구름대가 좁게 발달하면 동네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수량이 달라진다. 정체전선의 남북 이동, 태풍의 위치,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의 작은 변화가 비의 시간과 장소를 바꾼다.

그러나 비 예보의 어려움이 폭염 위험까지 지우지는 않는다.

기온 전망도 절대 맞는 예보는 아니다. 구름, 비, 태풍, 토양 수분, 도시열섬, 해수면 온도가 모두 영향을 준다. 다만 계절 규모에서는 배경장이 중요하다.

주변 바다가 따뜻하고,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에서 고온다습한 남풍이 들어오며, 상층 고기압성 순환이 강화되면 평년보다 더운 여름이 나타날 가능성은 커진다.

기상청도 7월 중순 이후 낮 기온이 30도 안팎에서 35도 안팎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의 위치 변화와 태풍 등 열대 요란에 따라 강수 지역과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핵심은 균형이다.

비가 언제 어디에 얼마나 내릴지는 계속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장마 뒤 한반도가 고온다습한 공기와 강한 일사, 상층 고기압의 영향을 동시에 받을 경우 폭염과 열대야 위험이 커진다는 큰 흐름은 가볍게 볼 수 없다.

비가 그치면 다른 여름이 시작된다


올해 여름은 늦게 움직였다.

6월 말까지 한반도는 비교적 덜 끈적한 공기 속에 있었다. 시민들은 선선한 밤바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올여름의 안전판이 아니다.

북쪽 찬 공기가 빠지고, 북태평양고기압이 몸을 키우며, 남쪽 바다의 수증기가 들어오면 한반도는 전혀 다른 여름으로 넘어간다.

이미 바다는 뜨거웠다.

남은 변수는 대기 배치다. 장마가 끝난 뒤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동시에 한반도에 영향을 주면, 더위는 짧게 지나가는 불편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재난이 된다.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 그 다음 날에는 더 높은 출발선이 반복된다.

6월의 선선함은 회상으로 남을 수 있다.

앞으로의 문제는 갑자기 무거워진 공기다. 비가 그친 뒤 햇볕이 강해지고, 습한 바람이 들어오고, 상층의 뜨거운 뚜껑이 닫히면 한반도는 쉽게 식지 않는다. 장마가 끝나면 여름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올해는 그때부터 더 위험한 여름이 시작될 수 있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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