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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초격차의 승부사들 "반도체 열전" ② 인텔(Intel) ...국유화의 비밀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2025년 8월 22일 금요일 정각 오후 4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정규장 마감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주말을 앞두고 안도해야 할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트레이딩 룸은 오히려 폭풍 전야 같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정규장이 끝난 직후인 오후 4시 30분, 백악관 브리핑룸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본시장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대형 폭탄선언이 떨어졌기 때문.
"미국 정부가 개입해 인텔(Intel) 지분 10%를 전격 확보했다. 미국은 이제 위대한 미국 기업인 인텔을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는 단일 최대 주주다." 정규 거래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백악관의 이 발표로 시간 외 거래(After-hours Trading) 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IT 기술 기업의 경영은 철저히 시장 논리에 맡긴다는 미국의 오랜 경제 불문율을 깨부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 잔여액 57억 달러와 미 국방부의 군사 안보 프로그램(Secure Enclave) 예산 32억 달러를 합친 총 89억 달러를 단숨에 인텔 보통주 4억 3,330만 주를 확보하는 ‘회계적 국유화’ 조치를 감행했다.

자유시장 원칙을 고수하던 전문가들은 즉각 격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의 스콧 린시컴(Scott Lincicome)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 기업과 미국의 기술 리더십, 그리고 경제 전반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끔찍한 악수(horrendous move)"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의 론 와이든(Ron Wyden) 상원의원 역시 "이것은 기업을 상대로 한 갈취(corporate extortion)에 불과하며, 조폭 패밀리가 보호비를 뜯어내는 방식과 다름없다"라며 백악관을 강력히 규탄했다. 반면 델 테크놀로지스 등 일선 제조 빅테크 진영은 "미국 영토 내 제조업 재건을 위한 대담한 전략"이라며 옹호론을 폈다.

이날 정규장에서 인텔(INTC) 주가는 정부의 지분 인수 단가($20.47)보다 높은 24.80달러로 마감해 겉으로는 정부에 장부상 평가이익을 안겨주는 듯했으나, 시간 외 거래에서 투자자들은 정부 세금이 부실 공장의 설거지 자금으로 쓰이는 것 아니냐며 깊은 혼란을 표출했다. 닷컴 버블 시절 시가총액 세계 1위를 다투며 전 세계 PC의 뇌를 지배했던 인텔이, 왜 자본시장의 퇴출 위기에 몰려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성벽 안으로 대피해야 했을까 . 그 처절한 몰락과 오판의 에피소드 그리고 트럼프의 국유화 바로 여기에 반도체 기업의 고민과 미래가 그려진다
인텔의 위대한 시작은 분노와 반역의 순간이었다. 1957년 9월의 어느 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윌리엄 쇼클리가 운영하던 연구소에서 젊은 과학자 8명이 집단 사표를 던졌다. 천재였으나 지독한 편집증과 고압적 태도로 부하 직원들을 거짓말 탐지기로 닦달하던 쇼클리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이들을 향해 ‘8인의 배신자(Traitorous Eight)’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 배신자들이 자금을 끌어와 세운 회사가 페어차일드 반도체였다. 이 페어차일드에서 다시 독립해 나와 1968년 세운 회사가 바로 인텔(Intel)이다. 창립자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천재적인 기술력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헝가리 난민 출신의 전문경영인 앤디 그로브는 냉철한 실행력으로 제국의 뼈대를 세웠다.

1980년대 초반, 인텔은 자사의 모태이자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하던 메모리 반도체(DRAM)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저가 공세에 밀려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창고에는 팔리지 않는 메모리 칩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매달 수천만 달러의 적자가 찍혔다.인텔은 고민끝에 그동안의 지탱축이던 DRAM 메모리 사업의 전면 철수를 선언했다. 전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하는 피의 구조조정 속에서 그들이 올인한 곳은 컴퓨터의 두뇌인 CPU(중앙처리장치)였다. 이 결단은 적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Windows)와 인텔의 CPU가 결합한 이른바 '윈-텔(Win-Tel) 동맹'이 폭발하는 PC 시대의 인프라를 독점하며 인텔은 수십 년간 50%가 넘는 폭리를 취하는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 시간이 지나면서 인텔의 영광도 무너져내렸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닌, 재무제표의 숫자에 눈이 먼 오만함이었다. 2005년, 최초의 아이폰 출시를 비밀리에 준비하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인텔의 최고경영자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를 찾아왔다. 잡스는 "휴대폰에 들어갈 PC 수준의 고성능 모바일 칩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오텔리니0는 인텔 내부의 재무 분석가들을 소집했다. 분석가들이 들고 온 보고서는 차가웠다. 애플이 제시한 단가(AP 가격)가 인텔의 높은 칩 생산 가공 마진 기준에 턱없이 못 미쳤고, 예측된 아이폰 예상 판매량으로는 신규 라인을 증설하는 비용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결론이었다. 오텔리니는 잡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훗날 오텔리니는 퇴임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피를 토하듯 후회했다."그때 내 본능은 잡스의 손을 잡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숫자가 아니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인텔의 예측은 100배 이상 틀렸고, 모바일 주도권은 그렇게 넘어갔다." 인텔이 마진율 계산기를 두드리며 안방에 주저앉아 있는 사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은 ARM 진영과 대만의 TSMC, 그리고 삼성전자가 완벽하게 장악했다. 기술 보증 수표였던 인텔은 모바일이라는 인류 최대의 플랫폼 전환기에서 철저히 소외당했다.
모바일에서의 실책은 파운드리(위탁생산) 미세공정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엔비디아의 GPU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인텔의 시가총액이 붕괴되며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다. 이 임계점에서 미국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8월 인텔 지분 9.9% 전격 인수를 발표한다. 칩스법 보조금 57억 달러와 국방부 프로그램 자금 32억 달러를 주식으로 전환한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텔 지분 9.9%를 확보하여 미국 정부가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이와 동시에 국방부 '시큐어 엔클레이브' 프로젝트도 가동됐다. 국방 및 안보용 반도체를 미국 내에서 독점 생산하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에 인텔 파운드리를 공식 지정하고 예산을 전폭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국방부의 '시큐어 엔클레이브' 프로그램은 군사·정보기관용 핵심 칩을 오직 미국 영토 내에 있는 인텔의 공장에서만 생산하도록 대못을 박았다. 시장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던 기업을 국가가 강제로 심폐소생해 안보 요새로 탈바꿈시킨 순간이다. 이어진 애플과의 파운드리 연합 구축도 주목을 끈다. 2026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애플과 인텔의 동맹을 발표하며, 인텔의 최첨단 18A 공정을 통한 애플 M시리즈 칩의 미국 내 생산을 공식화했다. .

미국 정부가 자유시장 경제의 대원칙까지 무너뜨리며 인텔에 직접 투자를 단행한 본질은 단순한 부실기업 구제가 아니다. 현재 미국 사회와 워싱턴 정치권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여론은 명확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도체 제조 패권을 다시 미국 영토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초당적이고도 강력한 민족주의적 열망이다. 자본의 효율성보다 국가 안보와 공급망 통제권이 최우선이라는 미국 내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이러한 초강수가 가능했다. 이러한 메가 트렌드 속에서 인텔의 미래는 단순히 '살아남은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립부탄(Lip-Bu Tan) CEO 부임 이후 인텔은 18A 최첨단 미세공정의 안정화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과거 SK하이닉스와 SK온을 이끌었던 글로벌 제조 전문가 이석희 부사장을 인텔 파운드리(Intel Foundry)의 최고 경영진으로 전격 영입하며 백엔드 공정 및 첨단 패키징 다변화에 사활을 걸었다. 미국의 국가적 지원과 글로벌 핵심 인재 수혈이 결합하면서, 인텔이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핵심 주역으로 다시 우뚝 설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두 기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대단히 엄중하고 위협적인 경고음이다. 그동안 인텔의 미세공정 실패와 파운드리 부진을 지켜보며 기술적 우위에 안도했던 국내 기업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쟁자를 상대해야 한다. 인텔은 더 이상 홀로 뛰는 외로운 주자가 아니다. 미국 정부라는 지상 최대의 자본줄과 국방부라는 확고한 내수 시장, 그리고 애플 등 미국 빅테크의 물량 지원까지 등에 업은 '국가 대표'이다.

메모리 분야의 초격차에만 안주하거나 파운드리 다변화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미국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부활하는 인텔의 거대한 성벽에 부딪혀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순식간에 밀려날 수 있다. 워싱턴이 꽂아 넣은 인텔의 깃발을 우리 반국 반도체 산업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텔 제국의 부활은 이미 성벽 너머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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