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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의 '휘-흩날리다 Ⅲ', 전통춤 자산의 위상과 미래지향의 모습

나의 신작연대기(80) '휘-흩날리다 Ⅲ', 정경화(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초빙교수, 정경화 류 프로젝트 대표) 재구성 안무·연출·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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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강선영류), 춤 정경화, 상궁 최지윤
이원의 뜰 너머/ 함박꽃 한 송이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해 따라 바람 따라 무심히 흘러내린 시간/ 계절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고/ 꽃은 피고 머무르고 스러졌다/ 먹빛 안개 수묵으로 번지고/ 가시거리는 유난히 짧았다/ 그녀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운명의 길/ 험로의 길 또한 자신의 몫일 터/ 모두의 평안과 무궁영화를 빈다/ 깃발은 바람 속 방향을 세우고/ 태평소 먼 시간의 결 흔든다/ 리듬이여, 흐름이여/ 온전히 그녀의 빛에 이르게 하라
5월 9일(토) 저녁 6시,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정경화 류 프로젝트’(예술감독 정경화) 주최·주관, 숨무용단·성신여자대학교·김숙자춤보존회 후원의 정경화의 춤 '휘-흩날리다 Ⅲ'이 공연되었다. '시간-가치의 순환'을 주제로 펼친 공연은 동시대성 확보와 문화 자산의 ‘흐름의 가치’를 사유하게 했다. 긴 여운을 이음해 발전해 온 우리 춤에 대한 존중의 춤은 전통과 창작에 걸친 정경화의 상상력으로 고급스럽게 빚은 고고한 결을 지니고 있었다.

'휘-흩날리다 Ⅲ'는 4장 8갈래의 춤과 연주로 구성된다. 반듯한 장(場)(1장 근원의 결(結): ‘변하지 않는 가치, 시간의 시작’, 2장 의식의 전이: ‘삶과 죽음, 경계를 넘나드는 몸’, 3장 생성의 언어: ‘전통 위에 피어나는 새로운 해석’, 4장 흩날림의 공명: ‘확장되는 에너지, 다시 이어지는 시간’), 갈래(강선영류 태평무, 신살풀이 road moon, 김숙자류 부정놀이춤, 지전무, 황무봉류 산조춤, 장한가, 앉은반 설장구, 성재형 소고-월하(月下))는 춤 가짐을 보여준다.

정경화는 정통 춤 미학에서 출발하여 삶과 죽음, 정화와 전이로 의미를 확장한 뒤 창작적 변주를 보여준다. 대단원에 이르러 에너지는 확산되고 다시 순환의 구조로 돌아간다. 공연은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창작, 미래의 가능성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춤이 지닌 본질과 확장의 방향을 함께 모색한다. 안무가는 전통과 창작이 교차하는 무대를 통해,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새롭게 피어나는 예술적 울림을 함께 느끼도록 재구성한다.
정경화의 춤은 시간 속에서 빛을 얻어가는 전통춤의 매력을 채집하여, 큰 스승의 사후에도 빛으로 남아 있는 감정의 결을 모던한 조명과 움직임으로 호흡하게 한다. 그녀의 춤 프레임에서 움직임은 가변의 생물체이며, 정신은 붉은 정열의 갓과 의상으로 여름날 꽃잎 같은 영혼의 흔적을 남긴다. 붉게 피어나는 모든 갈래의 춤은 미적 상처를 품은 채 흔들리며 타자와의 감각적 관계를 드러내면서 존재의 미적 가치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하며 변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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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강선영류), 춤 정경화, 상궁 최지윤
신살풀이(김숙자류), 춤 최경란이미지 확대보기
신살풀이(김숙자류), 춤 최경란
부정놀이춤(김숙자류), 춤 정경화이미지 확대보기
부정놀이춤(김숙자류), 춤 정경화
지전무, 춤 이예은·안현수·최지윤·김세원·김민정이미지 확대보기
지전무, 춤 이예은·안현수·최지윤·김세원·김민정
지전무, 춤 이예은·안현수·최지윤·김세원·김민정이미지 확대보기
지전무, 춤 이예은·안현수·최지윤·김세원·김민정
산조춤(황무봉류), 춤 정경화이미지 확대보기
산조춤(황무봉류), 춤 정경화

안무가는 각각의 장(場) 속에 갈래의 성격을 부여하고, 형태소(形態巢)에 대한 기억을 다듬어 내면을 다스린다. 그녀가 빚어낸 춤은 선홍빛 서사의 온전한 여정을 이끈다. ‘근원의 결(結)’은 ‘태평무’(강선영류, 춤 정경화 상궁 최지윤)와 ‘신살풀이. Road Moon’(춤 최경란)을 품는다. ‘의식과 전이’는 ‘부정놀이춤’(김숙자류, 춤 정경화)과 ‘지전무’(춤 이예은 안현수 최지윤 김세원 김민정)로 정화의 리듬과 순환을 잇는 의례의 바람직한 전범(典範)을 보인다.

‘태평무’는 절제된 몸짓 속에 오래된 축원의 시간을 품으며 한국 춤의 깊은 숨결을 피워낸다. 다양한 장단 위의 디딤과 사위는 신명과 품격이 교차하는 생명의 근원적 리듬을 드러낸다. ‘신살풀이. Road Moon’은 전통 살풀이의 응어리진 한을 의지의 리듬으로 다시 피워내며, 오늘의 삶 위에 저항과 지속의 몸짓을 새긴다. 달빛 아래 홀로 이어지는 춤의 궤적은 상처를 견디며 진전하는 존재의 고요한 선언이 된다. 영상과 신비의 빛이 상급 구조를 형성한다.

‘부정놀이춤’은 잡귀와 재앙의 기운을 씻어내는 정화의 몸짓 속에서, 무속적 의례의 깊은 생명력과 치유의 시간을 춤으로 되살린다. 부정놀이장단에서 당악까지의 발 놀음과 리듬은 새 터를 여는 신명으로 공간을 밝히는 정결한 울림으로 번져간다. ‘지전무’는 망자의 넋을 위로하며 한을 푸는 동해안 오구굿을 바탕으로, 생사의 경계를 잇는 기원의 몸짓을 다시 피워낸다. 느림과 격동의 춤은 절제와 역동, 슬픔과 해원을 품으며 순환하는 생명의 깊은 울림을 전한다.

‘생성의 언어’는 여성 춤의 품격을 제시하는 ‘산조춤’(황무봉류, 춤 정경화)의 남다른 매력의 즉흥과 남성 춤의 격조와 매력을 듬뿍 담은 ‘장한가’(춤 류일훈)의 여유를 꼽는다. ‘흘날림과 공명’은 악가무의 한 축인 음악의 ‘앉은반 설장구’(연주 유인상 정부교 박주홍)는 무대 뒤편에서 튀어나왔고, 전통춤의 가없는 매력의 한 모습으로 소고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전형이 된 ‘성재형 소고-월하(月下)’(춤 정경화)는 절정과 마무리의 정석을 밟아 간다.

‘산조춤’은 철가야금 선율 위를 흐르는 즉흥의 몸짓으로 자유롭게 섬세한 여성적 미감의 춤을 펼쳐낸다. 리듬의 결 따라 변화는 춤사위는 신무용적 형태미와 깊은 정서를 함께 품으며 자유의 미학을 드러낸다. 국수호 재구성의 ‘장한가’는 절제된 몸짓과 깊은 호흡 속에 선비의 풍류와 기개를 담아내며, 외적 화려함보다 내면의 정신과 풍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담백한 표현의 고요한 긴장감은 화려함을 덜어낸 자리에서 더욱 깊은 감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앉은반 설장구’는 빠른 장단 위로 겹겹이 파동하는 리듬 속에서, 전통 가락의 생동의 기(氣)를 역동적으로 확장한다. 섬세한 강렬한 울림은 몸과 호흡의 경계를 흔들며, 기운생동의 미학을 드러낸다. ‘성재형 소고-월하’(초연)는 달빛 아래 원을 이루는 여성들의 몸짓과 소고의 맑은 울림으로 부단한 시간과 관계의 순환을 그려낸다. 강강술래적 춤의 호흡은 서로를 부르고 이어주는 생명의 리듬이 되며, 흩어진 시간 속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공동체의 온기를 전한다.

장한가, 춤 류일훈이미지 확대보기
장한가, 춤 류일훈
앉은반 설장구(연주 유인상·정부교·박주홍)이미지 확대보기
앉은반 설장구(연주 유인상·정부교·박주홍)
정재형 소고-월하(月下), 춤 정경화이미지 확대보기
정재형 소고-월하(月下), 춤 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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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소고-월하(月下), 춤 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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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소고-월하(月下), 춤 정경화
정경화는 선화예중·고, 이화여대 무용과를 거쳐 성균관대 무용학 석·박사 출신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제97호 살풀이춤 전수자이다. 한국춤협회·한국전통출협회 이사, 문묘일무전통예술진홍원 수석이사, 성재형숨무용단 예술감독이다. 정경화는 안무가시리즈 안무가상(무용문화포럼, 2010), 제42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심사위원선정 특별예술가상(2022), ‘心-다스리다’(이수자지원사업선정, 2023), KCAF 대한문화예술제전 ‘최우수상’(2024) 수상의 재원이다.

정경화는 전통과 창작을 아우르며 다양한 리듬예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녀는 전통에 대한 깊숙한 경지를 달관함과 아울러 전통춤 기반의 창작무용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안무작은 ‘유체이탈’, ‘영혼의 외출’, ‘아름다운 무덤’, ‘난 숨을 쉬고 싶다’, ‘면벽침사’, ‘서쪽으로 기다’, ‘향미사, ‘마음을 쌓다…허물다’, ‘작온돌…큰울림’, ‘화랑’, ‘진혼’, ‘혼’, ‘始 서로를 살피다’, ‘까마귀 탱고’, ‘향미사Ⅱ’, ‘향미사Ⅲ-붉은사막’, ‘까마귀 탱고Ⅱ-공모된 침묵’, ‘고래 왈츠’ 외 다수가 있다.

전통은 스스로를 새롭게 생성하는 시간의 윤리이다. 인간의 몸은 기억을 보존하는 오래된 사원이며, 춤은 그 기억이 현재를 통과하며 재생하는 존재의 언어이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대립하지 않으며, 모든 예술은 순환하는 세계의 숨결을 드러낸다. 흔들리는 몸짓은 타자와 세계를 향해 자신을 열어두는 존재의 가장 깊은 진실이다. 정경화의 춤의 궁극은 화려한 형식이 아니라, 시간을 견딘 상처가 공동체의 온기로 다시 피어나는 순간에 있음을 밝힌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정경화 류 프로젝트 ⓒ송우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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