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성경을 포함한 그 어떤 당대의 기록도 그의 외모를 묘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시각적 공백은 오히려 무한한 투사의 공간을 창조한다. 기록의 부재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 세계를 투사할 수 있는 완벽한 캔버스가 되었고, 인류는 각 시대의 결핍과 욕망을 그 빈 공간에 그려 넣어 왔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성상(聖像)은 실재했던 인물의 초상이라기보다,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투사의 산물인 셈이다.
내사된 이미지라는 인식의 안경
대상관계론의 관점에서 인간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기 어렵다. 우리는 유아기부터 부모와 같은 주요 권위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들의 이미지를 내면화한다. 이를 내사(內射)라고 부른다. 내 안으로 들어온 타자의 이미지는 마음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특정한 안경이 된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유독 워너 살먼(Warner Sallman)의 온화한 예수상에 몰입했던 현상은 이러한 심리 기제로 설명된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엄격한 질서 아래 성장한 한국인들에게,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엄격한 아버지 상은 내면에 비판적인 초자아를 형성했다. 이때 서구적 예수의 부드러운 얼굴은 결핍된 정서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보상적 내사의 대상이 되었다. 즉, 한국인들은 낯선 서구적 얼굴을 통해 가부장적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서적 도피처를 찾았던 것이다.
반면 김기창 화백이나 김학수 화백 등이 그린 조선 선비 형상의 예수가 대중화되지 못한 것은 역설적인 이유에서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예수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권위와 가부장적 질서를 상기시킨다. 신앙인은 자신과 너무 닮은 대상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둔 이상화된 타자를 통해 구원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얼굴들은 사실 우리 내면의 갈등이 빚어낸 심리적 조정의 결과물이다.
장례식장의 고요 속에서 던진 질문
이러한 투사와 내사의 역동은 종교적 영역을 넘어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부모와의 관계로 이어진다. 필자는 최근 어머니를 여의었다. 백수(白壽)를 넘기도록 사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은 일제 강점기 시대 평양의 명문가의 막내딸로 태어나 정의여고를 졸업하셨고 평양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집안의 4대 독자 아들과 결혼하였다. 결혼 후 일본의 명문 대학교에 유학하여 경제학을 공부한 남편과 함께 동경에서 신혼생활을 보냈다. 남편이 대학교 4학년 때 학도병으로 끌려가 고향인 평양에서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면서 보냈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남편은 고향으로 오자마자 느닷없이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셨다. 해방 후 평양은 김일성의 치하로 재편되었고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박해했다. 1·4 후퇴 때 피난을 떠나 남편은 1951년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하였고, 졸지에 그는 목회자 부인이 되어 평양에서 피난 온 젊은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후 서울로 환도하여 교회의 사택에 거주하는 동안 남편은 이번에는 미국으로 유학하였다. 시부모님과 아들 셋을 키우며 2년을 보냈다. 유학 후 남편은 대학교 교수로 점차로 유명해졌다. 필자는 그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분주했던 조문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장례식장에 홀로 남은 깊은 밤, 필자는 인자하게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영정과 마주 앉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과연 어머니의 삶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조용히 영정 속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어머니,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 모습인가요?”
어머니는 사진 속에서 여전히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인자한 미소로 필자를 내려 보고 계셨다. 그 침묵 속에서 필자는 나라는 존재의 시기에 따라 어머니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조용히 반추해 보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변천사라기보다, 어머니라는 거울에 투사된 필자 자신의 내면적 성장사였다.
시기에 따라 변모하는 어머니라는 우주
유년기의 어머니는 나의 생존을 책임지는 절대적 세계이자 전능한 보호자였다. 이때의 어머니는 나를 지탱해주는 견고한 울타리로서 내면에 깊이 내사되었다. 그러나 자아가 성장하는 청년기의 어머니는 독립을 위해 넘어야 할 벽이자, 나의 무의식적 갈등이 투사된 그림자였다. 필자는 한때 어머니의 간섭에 반항했고, 그녀의 고리타분함을 비판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원망은 독립하고 싶지만 여전히 의존하고 싶은 나의 양가감정이 만들어낸 환영이었을지 모른다.
필자가 중년에 이르러서야 어머니를 신화적 껍데기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필자 역시 부모와 같은 나이가 되어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녀 셋을 키우는 중년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더 이상 전능한 보호자도, 나를 구속하는 간섭자도 아니었다. 그곳에는 한 시대를 치열하게 버텨내며 나이 들어가는 한 연약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의 주름진 손마디와 주름잡힌 얼굴은 나를 위한 희생의 징표이기 이전에, 그녀가 한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와 투쟁의 흔적이었다.
한 여성을 향한 객관적 직면과 화해
이제야 필자는 어머니의 삶을 더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왜 특정 상황에서 그토록 불안해했는지, 왜 자신의 욕망을 억눌러야 했는지를 비난이나 연민이 아닌 한 인간의 역사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를 어머니라는 거룩한 역할의 굴레에서 풀어주고, 자신의 고유의 이름과 인생을 가진 한 여성으로 마주하는 순간, 필자는 비로소 그와 인격 대 인격으로 화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직면은 고통스럽지만 치유적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완벽한 존재로 기대하는 투사를 거둘 때, 우리는 비로소 그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어머니로만 규정되지 않는, 그 자체로 고귀하고 온전한 존재로 우리 곁을 떠난다. 우리가 부모를 한 인간으로, 한 여성으로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관계 맺기는 비로소 성숙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우상 파괴를 통한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
예수의 실제 얼굴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가 가진 모든 이미지는 결국 각자 내면이 투사된 결과물일 뿐이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과 인격이란 내가 만든 이미지, 즉 나의 편의와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필요했던 자기중심적 대상을 해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내면화된 이미지를 직면하고 그 우상을 파괴할 때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타자로서의 존재와 마주할 수 있다.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던진 필자의 질문은 결국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내가 내사(內射)한 환상의 얼굴들을 하나씩 지워갈 때, 비로소 상대방의 진실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타자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고통과 희망을 품은 독립적 주체다.
나의 투사가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낯선 타자와의 대화, 그 불편하지만 경이로운 만남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영정 사진 속 어머니의 침묵은 필자에게 바로 그 우상 파괴의 용기를 묻고 있었다. 영정 사진 속에 어머니와의 대화를 마치면서 필자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속삭였다.
“엄마, 고마워.”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