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돈 희망친구 기아대책 인도적지원팀장
이미지 확대보기이번엔 베네수엘라다. 그동안 여러 나라의 재난 현장을 다녀왔지만, 속보를 접하는 순간의 무게는 매번 줄어들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재난 모니터링을 하던 중 6월 24일 저녁, 규모 7.2와 7.5의 연쇄 강진이 이 나라를 흔들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며칠 사이에 드러난 피해 규모는 사망자 3000명 이상, 부상자는 1만6000 명을 웃돌았다.
긴급구호는 재난 발생 후 48시간 안에 출국하는 것이 희망친구 기아대책 인도적지원팀의 대응 원칙이다. 그러나 이번엔 출국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피해지역인 카라카스 공항이 폐쇄됐고, 현장에서는 차량 렌트가 불가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지 네트워크조차 없던 터라, 주말 동안 상황보고서를 작성하는 한편 현지 네트워크 발굴에 매달렸다. 인근 국가의 기대봉사단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몇 단계에 걸친 소개를 거친 끝에 현지 한인교회와 협력 단체 한 곳이 연결됐다. 이 경로로 발렌시아 공항이 열려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곧바로 티켓을 끊고 당일 출국했다.
현지 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한인교회 교인들이 직접 차량을 내어주며 이동을 도왔다.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이 서로를 연결하며 길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렇게 피해 지역에 도착해 마주한 현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참사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미지 확대보기통상 구조 작업 지역은 민간인 통제가 이뤄지지만, 재난 발생 초기였던 탓에 현장 통제가 미비했다. 구조와 희생자 수습이 동시에 이어지는 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는 먼지가 자욱했고, 굴착기는 쉬지 않고 잔해를 걷어내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수색구조팀은 24시간 내내 실종자 수색에 매달리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들을 위한 지원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구호물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대응 체계와 지원 현황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페루에서 함께 베네수엘라 난민사업을 수행하던 국제이주기구(IOM) 담당자를 통해 베네수엘라 현지 IOM 관계자들을 소개받았다. 캠프 운영과 위생, 보건, 주거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을 만나 정부와 유엔이 준비 중인 이재민 수용 계획을 공유 받았고, 새롭게 조성되는 캠프의 위치와 운영 방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는 학교 시설과 유엔 캠프를 활용해 이재민을 단계적으로 수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은 집 주변을 떠나기를 망설였다. 여전히 실종된 가족을 찾고 싶었고, 무너진 집에서 조금이라도 남은 재산을 챙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 지역 곳곳에는 자발적으로 형성된 작은 임시 거처들이 흩어져 있었고, 지원 역시 균등하게 닿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국제기구의 대응은 분명 중요했지만 캠프를 중심으로 지원이 집중될수록, 상대적으로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기아대책은 이러한 지원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현장에 온 이유라고 판단했다.
필요를 확인한 뒤, 해가 있는 동안은 지원이 닿지 않은 임시 거처와 피해 지역을 찾아 발로 뛰었고, 해가 지고 나면 숙소로 돌아와 그날 확인한 필요 사항을 정리해 협력 단체를 물색하고 긴급필요조사(Rapid Needs Assessment) 자료를 작성했다.
동시에 한국 기아대책 본부에서도 여러 현지 NGO와 접촉을 이어갔고, 회신이 온 단체들은 현지에서 직접 만나 협력 가능성을 검토했다. 사업 수행 역량은 물론 투명성과 세이프가딩(Safeguarding·아동과 취약계층 보호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뒤 함께할 파트너들을 선정했다.
초기 식량과 위생키트 배분은 현지 NGO 또넬라다스 데 알레그리아(Toneladas de Alegría)와 함께, 사회복지공동모금회(CCK) 지원사업은 베네수엘라의 아동·가족 지원 전문기관 프레파라 파밀리아(Prepara Familia)와 추진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관과 역할을 나누며 현지 협력망을 확보했다.
준비는 그렇게 갖춰졌다. 이제 남은 것은 현장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