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가상공간서 천지창조'…인간, 피조물서 창조주가 되다

[미술 속 키워드로 읽는 삶(13)]생명 창조/소머러&미노뇨

인간이 자연과 환경의 일부임을 만끽하며


손 끝에서 생명을 가진 무언가가 창조된다

생명체가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하는 즐거움


무생물 기계와 '通하며~' 생명력 불어넣기


그 순간 우린 피조물이자 창조자 그 자체다


[글로벌이코노믹=전혜정 미술비평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과 땅, 빛과 물에서 시작된 세상에는 곧 온갖 동식물들이 생겨났고, 뒤이어 인간도 탄생했다. 우주의 역사가 얼마나 긴 지 가늠할 수 없으며, 과학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 탄생의 비밀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 정도가 아니라 사막의 모래 한 알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이 탄생하는 경이로움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갓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알을 깨고 나오는 새들이나 갓 태어난 새끼 동물들을 보는 사진이나 TV에서 접하는 것은 언제나 신비롭다. 우리는 봄이면 나무에서 돋아나는 새싹에 즐거워하고 집안에, 사무실 책상 위에 작은 화분을 둔다. 생명을 가까이 두고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서다.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아볼브(A-Volve),1994~97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아볼브(A-Volve),1994~97
물이 가득 찬 유리 수조 위는 터치스크린이다.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으로 형태를 그려 3차원의 가상 생명체를 만들면 이 생명체는 수조의 물속을 헤엄치게 된다. 이 생명체의 움직임과 행동은 그 모양에 달려있다. 즉 우리가 만든 모양이 이 생명체의 생존과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창조주의 영역인 생명의 탄생이 우리의 손끝에서 이루어지고 그 생명체가 물 위를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크리스타 소머러(Christa Sommerer)와 로랑 미노뇨(Laurent Mignonneau)는 ‘아볼브(A-Volve)’에서 우리를 피조물의 위치에서 창조자의 위치로 변화시킨다. ‘아볼브’는 밀림에서 새로운 생명체들이 적응과 번성, 혹은 멸종되는 운명을 맞이하는 자연계의 현실에 대한 실험적인 모방이다.

이 같은 생명체가 독립된 컴퓨터의 메모리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란 “사용자가 매체로 자신의 경험을 직접 조작하고, 매체를 통해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능력”(랜달 패커(Randall Packer), 켄 조단(Ken Jordan))이다.

예술에서의 상호작용성은 관람객이 작품에 개입, 작품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이 접근하는 이미지나 텍스트를 가동시키거나 변화시켜 작품의 완성 및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브렌다 로렐(Brenda Laurel)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참여(engagement)로 정의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참여는 “화면 속의 디제시스(diegesis: 영화속에서 전개되는 허구의 세계)가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마치 사실처럼 빠져 들어가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아볼브’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는 관객으로 하여금 진화에 직접 참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 된다. 관객이 그리는 바다 생물의 모습이 더 유체역학적일수록, 그 생명체는 더 오래 살아남는다. 우리는 유리를 건드리는 것으로 수조의 생명체들과 상호작용 할 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만들게 됨으로써, 단순한 참여적 관객을 넘어 작품의 창조, 그리고 생명체의 창조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예술가와 창조자가 된다.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트랜스플랜트(TransPlant),1995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트랜스플랜트(TransPlant),1995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트랜스플랜트(TransPlant),1995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트랜스플랜트(TransPlant),1995
‘트랜스 플랜트(Trans Plant)’에서는 관람객이 반원의 방에 들어가 자신을 둘러싸기 시작하는 가상 정글의 일부가 된다. 설치된 공간으로 한 발자국 다가서면, 앞에 펼쳐진 화면 속에 우리 자신이 들어가는 걸 볼 수 있다. 몸에 어떤 장치도 달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다 보면, 나의 발걸음과 움직임에 따라 정글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나무와 식물들은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자란다. 얼마나 빨리, 자주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른 종의 식물들을 자라게 할 수 있다.

식물들의 크기와 색상, 모양도 나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들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것은 부모가 만들어내는 식물들과는 완전히 달라지지만, 팔과 다리를 뻗어서 식물을 크고 무성하게 키울 수도 있다. 가상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몰입도와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자신 만의 숲을 창조하는 것이다. 식물들이 점점 무성하게 자라나 공간을 각기 다른 풀들로 덮어버리면 우리는 점점 더 가상 정글에 파묻혀 버린다. 성장하는 풀숲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 자신이 가상공간의 3D인물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클로드모네작수련(WaterLillies),1920-1926,캔버스에유화,200x425cm이미지 확대보기
▲클로드모네작수련(WaterLillies),1920-1926,캔버스에유화,200x425cm
“둥근 방을 상상해보라. 식물들이 사방에 있는 물의 벽이 있고, 이 투명한 화면은 때로는 초록빛을, 때로는 보랏빛을 띤다. 고요하고 잔잔한 물은 꿈같이 연약하고 섬세한 분위기로 꽃들과 덧없는 색들을 비춘다.”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Claude Monet)와 그의 후기 작품 ‘수련(Water Lillies)’에 영감을 얻은 소머러와 미노뇨의 ‘물의 정원(Eau de Jardin)’은 가상 물 정원의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모네가 실제 해석된 식물의 이미지와 물 표면에 비친 식물의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흐림으로써 가상성의 두 층위를 창조했다면, ‘물의 정원’은 실제 식물과 스크린 상의 가상 식물 그리고 가상이 물 표면에 비춰지는 가상의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가상성의 여러 층위를 창조한다. 스크린과 공중에 매달린 화분 사이를 걸으면서 우리는 화분의 실제와 스크린의 가상을 연결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물의정원(EaudeJardin),2004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물의정원(EaudeJardin),2004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물의정원(EaudeJardin),2004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물의정원(EaudeJardin),2004
소머러와 미노뇨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자연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 직접 생명체를 손끝에서 창조하기도 한다. 또한 익숙한 기계의 조작을 통해 전혀 다른 결과물이 탄생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생명 타자기(Life Writer)’는 타이핑을 하는 행위를 통해 생명을 창조하는 작품이다. ‘생명 타자기’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구식 타자기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일반적인 종이가 스크린으로 사용된다. 타자기의 키를 눌러 글자를 치면, 그 글자는 일반 종이에 투사되어 나타난다. 줄 바꿈을 위해 막대기를 밀면, 스크린 위의 글자들은 거미 같이 작고 검은 생명체로 변모한다. 소머러와 미노뇨는 유전 연산법(genetic algorithm)에 기초하여 생명체를 제작했고, 글자들은 생명체의 행동과 움직임을 결정하는 유전적 코드로 이용된다. ‘생명 타자기’는 타이핑을 치는 행위를 생명 창조의 행위와 연결함으로써 열린 결말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관객과 생명체간의 상호작용성은 디지털 생명체의 탄생에 필수불가결하며, 살아있는 듯한 이 작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 사이에서 태어난다.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생명타자기(LifeWriter),2006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생명타자기(LifeWriter),2006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생명타자기(LifeWriter),2006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타소머러&로랑미노뇨작생명타자기(LifeWriter),2006
소머러와 미노뇨에게 예술과 디자인, 과학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와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경계 또한 중요하지 않다. 관객은 작품의 창조자이자 작품의 일부, 그리고 감상자의 역할을 함께하게 된다. 우리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직접 가상의 생명을 창조함으로써 피조물의 위치에서 격상하는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오만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자연과 환경의 일부임을 만끽하며 우리의 손끝에서 생명을 가진 무언가가 창조되어 소통하는 즐거움이다. 생명 그 자체인 우리가 끊임없이 무생물인 기계와 소통을 하며 생명을 불어넣듯이 우리는 이미 피조물이자 창조자 그 자체이니까.

■작가 크리스타 소머러 & 로랑 미노뇨는 누구?

크리스타 소머러와 로랑 미노뇨는 상호작용적 컴퓨터 설치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소머러는 비엔나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비엔나 순수미술 아카데미에서 현대 조각과 미술 교육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미노뇨는 에콜 데 보자르에서 현대 미술과 비디오 아트 석사학위를 땄다. 소머러와 미노뇨는 CAiiA-STAR, 영국의 웨일즈 예술 대학 등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2년부터 팀을 이루어 상호작용 작품의 협업을 이루었다. 이들은 일본의 IAMAS 미디어 아트 국제 아카데미 및 ATR 미디어 통합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랩의 교수였으며, 현재 오스트리아 린츠의 예술 디자인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전혜정은 누구?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