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국민이 빼앗긴 주권 되찾는다" 신념으로 보건 안보 첨병 100년
1조4천억 규모 신약물질 수출 계약, 단일품목으로 국내 제약 사상 최대
유한양행이 창립 100년을 맞았다.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빼앗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시작한 보건 안보의 첨병 100년이다. 2018년에는 글로벌 제약사인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얀센바이오테크와 1조4천억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며 제약업계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유한양행 100년의 발자취를 통사 1회와 연구개발 부문 2회 등 세 차례 싣는다. <편집자주>1조4천억 규모 신약물질 수출 계약, 단일품목으로 국내 제약 사상 최대
이미지 확대보기모진 바람에도 100년, 살을 에는 서릿발 추위에도 100년. 어느 것도 기업가 정신을 앗아갈 수 없었다. 일제 가시밭길을 걸어온 피와 땀은 한국전쟁 포화 속 재기의 힘이 됐고 그 힘은 지속가능의 구심점으로 면면히 오늘날 이어져 새로운 100년의 출발점에 섰다. 유한양행 창업 100년 말이다.
유일한은 1925년 한국 녹두를 구입하기 위해 일제 압제에 시달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미국에 머물며 유일한은 중국 음식에 쓰이는 숙주나물 통조림을 개발하고 식품회사를 만들어 큰 돈을 벌었다. 그가 본 고국은 참혹했다. 국민 대부분은 영양 결핍, 기생충 감염, 학질, 폐결핵에 시달리고 있었고 변변한 의약품은 구경할 수도 없었다. 잃어버린 주권을 찾기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건강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제약회사 설립이라는 실천을 낳는다.
소년 유일한, 미국 유학 침례교 신자 집에 기거...청교도 정신 배워
유한양행 기초는 보건 안보의 실천 정신이었고 그 기초 위에서 피어나는 무성한 잎과 열매는 청교도 정신과 스포츠맨십에서 비롯됐다. 기업가 정신의 바탕은 이랬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기업가 정신은 한국인 모두에 친근한 유한양행 상표에서 찾을 수 있다. 원전은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의 딸이 조각한 작품을 뜬 목각화다. 서재필이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말과 함께 기념 정표로 준 그림이다. 서재필과의 인연은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한은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 자유대회에 참여한다.
미국판 3·1 운동. 유일한은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등 독립운동가들과 결의문을 기초하고 작성한다. 당시 대학생으로선 유일(唯一)한 유일한(柳一韓)이었다. 그 버들잎 무성한 버드나무(버들 柳)는 유일한의 성(姓)과 같고 바람에 꺾이지 않는 깊은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영속성을 상징하기에 유일한은 이를 유한양행의 상표로 삼았고, 지금 푸른 잎 무성한 거목으로 자랐다.
본명 유일형, 대한민국 韓 넣어 개명...형제 모두 개명
유일한의 본명은 유일형(柳一馨). 그러나 미국에서 일한으로 개명했고 형제 모두 돌림자를 한(韓)으로 바꿔 개명시켰다.
1926년 부인 유호미리 여사와 귀국한 유일한은 서울 종로2가에 유한양행을 창립한다. 그러나 의약품 유통은 일본 약재상이 쥐고 있었고 호적도 없고 약업 허가 등이 동시에 문제가 됐지만 주변 도움을 얻어 장애물을 넘어 정식으로 의약품 수입을 한다. 결핵 기생충 피부병 등 당시 창궐하던 질환을 치료하는 약이었다. 유일한은 사장으로 1인 다역을 하며 회사를 꾸려갔다.
아마 영업사원을 둔 국내 최초의 회사가 아닐까. 유한양행이 취급하는 의약품이 거의 수입품이라 모든 업무가 영어로 처리됐기에 영업사원 모두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학술교육도 했다. 매월 2회 교수를 초빙했다.
해방은 제약업계에겐 초비상 상태를 초래했다. 구호의약품 명목으로 서양 의약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페니실린, 비타민, 소독약, 쥐약, 비듬약 등 일상생활에 필요했지만 그동안 구하기 어려웠던 것들이었다. 이 약들이 병원과 약국에 거의 무상으로 공급되면서 국내 제약업계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원료 부족이었다. 미 군정청이 원료 등을 나눠주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원료 트럭에 싣고 피난길에...부산서 공장 빌려 생산
그래도 유한양행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2년 이상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원료를 비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38선 분단과 사회적 혼란으로 기업 활동은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은 모든 사회 질서를 무너뜨렸다. 제약업계도 예외가 될 수 없었고 유한양행은 불안과 초조함 속에 서울 수복을 기다렸고 다행히 공산당 점령기간 중 잃은 것은 전화교환대 한 대 뿐이었다. 공장 시설을 잃지 않은 건 천운이었고 덕분에 동상용 연고를 군납할 수 있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행운도 잠시. 1·4후퇴로 유한양행도 피난길에 오른다. 본사와 소사공장 제품과 원료를 포장해 번호를 매겼다. 번호가 작을수록 중요한 물품이었다. 화차와 트럭 4대를 확보해 대구로 향했다. 이후 부산으로 이동해 책임자들이 모두 합류했고 범일동에 공장을 빌려 제품을 생산했다. 그나마 상당량 제품과 원료 수송에 성공했기에 생산을 재개할 수 있었고 품질도 유지할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 코리안모터스, 자동차사업 선견지명 '미완'에 그쳐
유한양행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사실을 아는가. 미완에 그친 선견지명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유한양행은 광복 직후부터 자동차사업을 검토했고 부속품을 수입하고 있어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상황. 유일한은 코리안모터스를 세웠다. 미국 크라이슬러와 제휴를 맺어 국회에 승용차 15대를 납품하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1955년 정부가 자동차 및 부속품 수입제한 정책을 발표하며 치명타를 입었다. 당시 부산 세관창고에 묶인 10만 달러 상당 부속품은 끝내 회수하지 못해 회사는 자금난에 빠지게 된다. 결국 코리안모터스를 청산하면서 제약사업에 집중, 더 큰 성장을 도모하는 결단의 계기가 됐다.
이미지 확대보기2018년 대형 기술수출로 글로벌 반열 오르다
제약 외길의 여정은 2018년 유한양행의 이름을 글로벌 반열에 올려놓는 성과로 빛을 발한다. 11월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 얀센바이오테크와 레이저티닙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 12억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조4900억 규모. 국내 제약산업 기술수출의 신기원을 열었다.
레이저티닙은 비소세포폐암 치료 신약 후보물질로 상업화까지 성공하면 1조3500억원에 이르며 매출에 연동된 로열티도 확보하게 된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기술수출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유한양행의 이러한 혁신신약 개발 중심에는 '열린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외부 바이오 벤처와 연구기관이 보유한 유망 후보물질을 적극 도입하고 이를 임상 개발과 사업화로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산업 생태계 전반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 대표적 결실이 바로 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이다.
이는 국내 신약 개발 역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세계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전과 약속의 새로운 100년 'Great & Global'
유한양행은 대한민국 보건 안보의 최일선을 지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해 말 그대로 백년기업이 됐다. 이제 유한양행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유일한 박사의 정신과 가치를 되새기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먼저 구사옥 리노베이션. 대방동 본사 옆 구사옥을 '창립 100주년 기념관 및 복합문화공간(윌로우 하우스 Willow House)'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올해 6월 개관한 윌로우 하우스는 지하 2층, 지상 4층으로 유일한 박사와 유한양행의 역사와 철학을 온전히 전달하고 있다.
문화사업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창작 뮤지컬 '스윙데이즈_암호명 A'는 실제 비밀 독립작전 냅코작전을 세상에 알렸고 창작 웹툰 'NEW 일한'을 공개해 유일한 박사의 '영웅적 모습'이 아닌 가치관에 초점을맞춰 청년 세대에 친숙하게 다가가는 모습도 보였다.
유한양행의 지난 100년이 신뢰를 쌓아온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혁신신약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성과로 그 신뢰에 답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Great & Global'. 새로운 약속의 100년이 시작됐다.
이미지 확대보기엄정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stoday@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