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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큰 별’ 신격호, ‘롯데 신화’ 남기고 잠들다

자수성가 사업가이자 한국 유통산업의 선구자
불투명 경영체제와 후계구도 분쟁 등은 비판적 평가

황재용 기자

기사입력 : 2020-01-2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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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우리나라 유통산업을 선도한 사업가로 한국 최고의 경영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숙원사업이던 롯데월드타워 118층 전망대를 찾은 모습. 사진=글로벌이코노믹 DB
지난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한 '유통 큰별'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해 한국 유통산업을 선도한 자수성가 사업가로 꼽힌다. 다만 불투명 경영체제와 후계구도 분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는 비판적 평가를 받는다.

롯데그룹과 재계 등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사업가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 껌을 팔면서 '롯데'라는 간판을 올리고 성장을 거듭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롯데그룹을 재계 5위 매출 83조 원의 대기업으로 만든 '롯데 신화'를 창조했다.

특히 그는 1968년 한일 수교 후 조국인 한국에서 투자를 시작하며 국가 산업 발전에 열정을 쏟은 인물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던 우리나라 유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동시에 관광·면세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관련 산업의 기반을 구축한 한국 최고 경영자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1973년 지하 3층 지상 38층 1000여 객실의 규모를 갖춘 동양 최대 특급호텔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을 개장했다. 1979년에는 롯데호텔서울 옆으로 롯데백화점을 열며 우리나라에 선진국형 백화점의 시작을 알렸다.

여기에 1989년에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기록으로 남은 서울 잠심 롯데월드를 선보였다. 평화건업사(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 등을 인수하고 투자를 확대하며 롯데그룹의 사업 영역도 꾸준히 늘려 나갔다.

신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던 서울 잠심 롯데월드타워도 빼놓을 수 없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관광입국을 이뤄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그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0년 11월 롯데월드타워 착공에 들어갔으며 마침내 2017년 4월 국내 최고층(123층, 555m) 건물을 탄생시켰다.

다만 독단적으로 전권을 휘두르는 '황제 경영'과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신 명예회장은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하는 폐쇄적인 지배구조로 황제 경영을 지속했으며 소유와 경영을 동일시 한 경영 방식은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중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은 신 명예회장의 전근대적인 경영 방식을 세상에 그대로 보여준 계기가 됐다. 일부 지분만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불투명 경영체제는 물론 '손가락 경영'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의 업적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됐을 만큼 그는 높은 평가를 받는 사업가이자 유통산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투명한 경영체제와 경영권 이전 실패는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황재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soul3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