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난 해결사로 뜬 차세대 원전, 우라늄 농축 인프라 내재화 속도전
천연우라늄 내세운 중수로의 역습과 핵심 밸류체인 장기 성장 로드맵
천연우라늄 내세운 중수로의 역습과 핵심 밸류체인 장기 성장 로드맵
이미지 확대보기AI 시장 급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등하자 글로벌 원전 시장이 핵연료 자립을 두고 거대한 전쟁터로 변했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금지한 이후 소형모듈원자로(SMR)에 필수적인 핵연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상시 가동할 기저부하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 업계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거나 직접 투자에 나서면서 자본시장의 시선은 원자로 개발사를 넘어 핵연료 밸류체인으로 이동 중이다.
빅테크의 전력 수요는 이미 정량적 데이터로 증명된다. 주요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연평균 성장률(CAGR)은 향후 10년간 20% 안팎의 고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 낙관 시나리오는 25%를 웃도는 성장도 제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운영사) 기업들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이미 일부 소규모 국가의 연간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핵연료 공급망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서방의 원전 르네상스는 신기루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미·영, 4조 원 투입해 러시아 핵연료 독점 구조 깬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지난 28일(현지 시각) 서방 국가들이 새로운 원자력 연료 개발을 위해 치열한 속도전을 벌인다고 보도했다. 현재 SMR과 4세대 차세대 원전은 대부분 우라늄-235(U-235) 농축도를 5~20%로 높인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을 연료로 설계된다. 문제는 이 연료를 상업 규모로 공급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러시아의 테넥스(TENEX)와 중국핵공업집단(CNNC)뿐이라는 점이다.
이에 미국 에너지부(DOE)는 국내 우라늄 농축 능력을 키우기 위해 27억 달러(약 4조1600억 원)를 배정하며 영구적인 연료 자립을 선언했다. 영국 정부 역시 HALEU 생산 지원을 위해 3억 파운드(약 6130억 원)를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센트러스 에너지는 오하이오주 파이크턴 시범 공장에서 2023년 10월부터 2025년 중순까지 920㎏ 이상의 HALEU를 생산하며 국산화 가능성을 시험했다.
연료 자립이 늦어지자 틈새를 노린 대체 연료인 저농축 우라늄 플러스(LEU+)가 빠르게 치고 올라온다. 제너럴일렉트릭(GE) 히타치, 웨스팅하우스, 아알로 아토믹스 등 주요 원전 개발사들은 농축도 5~10% 수준인 LEU+로 눈을 돌렸다.
유렌코 미국 법인은 뉴멕시코주 시설에서 LEU+ 생산 허가를 취득하고 상업 생산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이 HALEU 대량생산 코드를 깨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 조달 가능한 LEU+를 쓰는 원전이 시장 진입에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50년 검증된 캐나다 중수로, 미국 AI 시장에 700MW 선전포고
자동차·에너지 전문매체 오토노션은 29일 캐나다 엔지니어링 기업 앳킨스레알리스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700MW급 중수로인 '인핸스트 캔두 6(EC6)'의 사전 신청 라이선스 검토를 위한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미국 벤처기업들이 서류상 SMR 모델로 투자자를 모으는 사이, 캐나다는 이미 검증된 대형 원자로로 미국 시장 진입을 시도하는 셈이다.
캔두 원자로의 최대 강점은 우라늄 농축 절차가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 경수로는 정제와 농축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캔두는 중수를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해 광산에서 캐낸 천연우라늄을 그대로 연료로 쓴다. 공급망 리스크에서 완벽하게 자유롭다. 이는 HALEU 공급망 병목을 우회하는 가장 현실적인 상업적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운전 중 연료 재장전 기술도 핵심 무기다. 미국의 기존 경수로는 연료 교체를 위해 18~24개월마다 몇 주 동안 발전소를 멈춰야 한다. 반면 캔두는 가동 중에도 개별 압력관을 열어 연료봉을 바꾼다. 전력 중단 없는 24시간 상시 가동이 필수적인 AI 데이터센터 운영사 입장에서 운영 효율성을 크게 높일 요인이다.
700MW급 원전 1기는 대형 AI 데이터센터 단지 1~2개를 직접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앳킨스레알리스는 이미 미국 전력회사, 주 정부, 하이퍼스케일러들과 부지 선정을 두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AI 전력–원전 밸류체인 지도
글로벌 자본시장은 우라늄 채굴부터 최종 전력 공급까지 이어지는 연쇄적 밸류체인에 집중한다. 첫 단계인 우라늄 채굴·정제 부문에서는 천연우라늄 가격 상승세의 직접적 수혜주인 카메코와 카자톰프롬이 핵심 공급 거점으로 부상한다.
우라늄 농축·가공 단계에서는 미국 내 HALEU 장기 계약 수혜 가능성이 큰 센트러스 에너지와 유렌코 그리고 웨스팅하우스가 서방 공급망 내재화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원자로·SMR 기술 부문에서는 뉴스케일파워와 테라파워, GE히타치가 차세대 노형을 개발 중이며, 중수로 원천기술을 보유한 앳킨스레알리스는 EC6의 미국 인허가 여부에 따라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이 기대된다.
최종 전력 유틸리티 부문에서는 콘스텔레이션과 비스트라가 빅테크의 원전 장기 PPA 수요를 흡수하며 테마의 장기 펀더멘털을 지탱한다.
한국 원전과 인프라 기업들의 수혜 궤도도 명확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 등 미국 주요 SMR 업체들과 지분 투자 및 주기기 공급 계약을 맺어 가장 직접적인 수혜주로 분류된다. 다만 최근 뉴스케일의 사업 지연 리스크가 불거진 만큼 글로벌 파트너 다각화 여부가 향후 주가의 변수다.
현대건설은 글로벌 원전 EPC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한전기술과 한전KPS는 설계·정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다. 원전 건설과 데이터센터 증설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송배전 투자를 동반하므로, 초고압 변압기와 개폐기, HVDC 등 송배전 투자 사이클 수혜를 직접 받는 LS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성장세도 뚜렷하다.
기술 경쟁에서 연료 조달 비용 경쟁으로의 전환
현재 글로벌 원전 시장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연료 조달 비용과 경제성을 따지는 단가 경쟁으로 전환 중이다. HALEU 기반 SMR은 고효율 구현이 가능하고 면적 대비 출력 밀도가 높지만, 연료 생산 단가가 매우 높고 공급망 불안 리스크가 상존한다.
이에 비해 LEU+ 기반 SMR은 서방 진영이 보유한 기존 농축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가장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꼽히나 기술적 최적화 수준은 제한적이다.
천연우라늄 중수로는 별도의 우라늄 농축 과정이 필요 없어 공급망 리스크가 제로에 가깝다는 독보적인 장점이 있는 반면, 대형 원전 특성상 초기 설비투자(CAPEX) 부담이 크고 미국 규제 심사 장벽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핵심 투자 리스크
자본시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첫 번째 요인은 연료 가격과 마진 압박이다. 천연우라늄 가격 변동성과 농축 비용 증가는 유틸리티 기업들의 마진을 압박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미국 규제당국(NRC)의 인허가 지연이다. 미국 규제 기준은 지난 50년간 경수로 중심으로 제정돼 중수로 구조나 차세대 SMR 노형은 심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초기 CAPEX 초과 리스크로, 첫 상업 노형의 경우 공급망 미비로 예산을 크게 초과할 위험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요인은 빅테크 이탈 리스크다. 전력 공급 개시 시점이 데이터센터 가동 타임라인보다 늦어진다면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원전을 포기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조합 등 다른 대체재로 이탈할 수 있으며, 빅테크의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원전 테마 전반의 장기 성장 모멘텀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자산 배분의 향방을 가를 3대 주가 트리거 지표
원전 연료 다변화와 차세대 원자로의 성패를 가를 핵심 트리거 지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미국 유렌코 시설의 LEU+ 상업 생산량 본격화 시점은 서방의 단기 연료 부족 해소 여부를 가르는 척도가 된다.
캐나다 EC6 원자로에 대한 미국 NRC의 1차 심사 결과 발표와 타임라인 준수 여부는 규제 리스크 해소를 알리는 가장 강력한 주가 이벤트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산 우라늄 대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방 원전 기업들의 정제 비용 증가율과 마진 압박 지표를 확인해야 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세 가지 지표의 가시적인 개선 여부를 확인하며 밸류체인별로 접근하는 분할 투자 전략이 유효하다고 조언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