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양해각서 초안 합의에도 레바논 변수·핵 문서화 요구로 협상 재교착
호르무즈 봉쇄 100일 넘어 세계 에너지 시장 비상… 이란 물가 2차 대전 후 최고
호르무즈 봉쇄 100일 넘어 세계 에너지 시장 비상… 이란 물가 2차 대전 후 최고
이미지 확대보기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60일 휴전 연장, 핵 프로그램 협상 개시를 골자로 한 양해각서 초안에 양측 실무진이 잠정 합의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구두 핵 공약으로는 부족하다며 문서화를 요구하면서 협상 타결이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확전 움직임이 이란의 협상 참여 의지를 흔드는 변수로 떠올랐다.
욕설 통화에 드러난 미·이스라엘 균열
미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와 ABC뉴스는 2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오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약 15분간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고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의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지구 공습 재개 명령을 전해 듣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고성을 질렀으며, "넌 미쳤다. 나 없었으면 감옥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매체들은 전했다.
다만 이스라엘 채널12는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를 직접 겨냥한 인신공격은 없었으며 양측이 베이루트 공습 자제를 조건으로 한 헤즈볼라 공격 중단에 합의했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 내부 반응도 엇갈렸다. 야이르 라피드 야당 대표는 "이스라엘이 완전한 미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고, 반면 네타냐후 지지 진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이유로 총리를 성토했다.
WSJ은 이번 갈등이 두 지도자의 일시적 충돌이 아니라 전쟁 종결 방식을 둘러싼 구조적 이견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가격 안정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협상 타결이 시급한 반면,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 여론의 강경 대응 요구와 부패 재판 정치 일정 속에서 군사 작전 지속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핵 문서화 vs 제재 해제… 봉합 안 된 쟁점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2일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 출석해, 이란이 종전 후 핵 문제를 협상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으나 이것이 타결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란이 먼저 호르무즈 해협을 무조건 개방하고 기뢰를 제거해야 하며, 이후 60~90일 동안 기술 전문가 협상을 통해 고농축 우라늄 처리 방안과 핵 프로그램의 심각한 제한 또는 폐기를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재 해제는 핵 공약 이행을 전제로 하며, 호르무즈 개방 대가로 즉각 제공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란 측은 반응이 엇갈린다. 이란 국영 파르스 통신은 중재자를 통한 메시지 교환이 며칠째 중단됐다고 보도했고, 이란 협상 수석대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세가 계속되면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직접 대결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은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소셜미디어에 반박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에 대해 루비오 장관은 "그가 어느 수준에서 점점 더 관여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면서도 "모든 소통은 서면과 중개자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는 같은 날 UAE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란에서 진행되던 많은 핵 활동이 이제 멈췄다"며 전쟁으로 인한 이란 핵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란 물가 2차 대전 후 최고… 호르무즈 봉쇄 100일의 경제 충격
미국의 협상 지렛대는 이란 경제의 급속한 붕괴다. 이란 중앙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5월 연간 인플레이션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에 달했다고 공식 인정했다.
리알화 폭락, 전쟁 장기화, 해상봉쇄에 따른 석유 수출 차단이 겹치면서 일상적인 물가와 의료비가 폭등했다. 미 재무부는 2일 이란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노비텍스와 다른 3개 거래소에 추가 제재를 가했다.
노비텍스는 2025년 이란 전체 암호화폐 유입의 50% 이상을 처리하며 이란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거래를 중개해왔다고 재무부는 밝혔다.
세계 경제에도 충격파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원자재 시장 전망에서 2026년 에너지 가격이 24% 급등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브렌트유 가격이 올해 배럴당 평균 86달러(약 13만 591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계속될 경우 취약 개발도상국들의 석유 수입 비용이 연간 200억 달러(약 30조 3700억 원)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국가 인구는 약 10억 명으로, 그 중 30% 이상이 하루 3달러(약 4555원)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미국 항구 봉쇄가 이란에 하루 수억 달러의 수입 손실을 안기고 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2일 기준 24척이 이란혁명수비대의 허가를 받아 통항한 반면, 미군은 이란 항구를 향하던 유조선 1척을 추가로 나포했다고 중부사령부가 밝혔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MSC는 같은 날 자사 선박 사르이스카 V호가 이라크 움 카스르 항에서 이란혁명수비대의 공격으로 피탄됐다고 확인하면서, "우리는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중립 상업 선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에서는 2일 이스라엘과 레바논 대표단의 첫날 회담이 국무부에서 열렸지만 뚜렷한 진전 없이 마무리됐고, 회담은 다음 날도 계속될 예정이다. 이란이 레바논 문제를 미·이란 협상과 연계하려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남부 레바논에 대한 작전을 계속하고 있어 협상 타결의 가장 큰 변수로 남아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