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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달러 선 넘은 '피의 유가'… 호르무즈 봉쇄가 초래한 글로벌 에너지 '퍼펙트 스톰’

이란 전쟁 9일째, 중동 거점 산유국 '강제 감산' 돌입하며 공급망 동맥경화 심화
브렌트유 30% 폭등 속 무르반·오만유 100달러 돌파… 유가 '천장' 실종 위기
한국, 9600만 배럴 비축유 방전 준비… 30년 만의 '석유 가격 상한제' 부활 기로
전쟁의 여파가 중동 산유국들의 강제 감산으로 이어지며 에너지 공급망이 붕괴 수준에 직면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전쟁의 여파가 중동 산유국들의 강제 감산으로 이어지며 에너지 공급망이 붕괴 수준에 직면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제 유가 상단에 대한 예측은 의미가 없다.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 기간이 모든 경제 지표를 결정할 것이다."

이란 전쟁이 발발한 지 9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세계 석유 공급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글로벌 석유 시장이 통제 불능의 '카오스' 상태로 진입했다.

블룸버그통신(Bloomberg)은 지난 8일 오후 8시 43분(현지 시각) 보도를 통해 전쟁의 여파가 중동 산유국들의 강제 감산으로 이어지며 에너지 공급망이 붕괴 수준에 직면했다고 정조준했다.
특히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생산과 물류가 동시에 멈춰 서는 '복합 위기'의 성격을 띠고 있어 전 세계 경제에 하방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물류 마비가 부른 '역설적 감산'… 중동 산유국 공급 동력 상실


현재 중동의 석유 생산 현장은 '팔 배가 없어 생산을 멈춰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혔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되면서 유조선들이 해당 해역 진입을 거부하자, 생산된 원유를 저장할 육상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취합한 현장 데이터에 따르면, 이라크는 이미 전쟁 이전보다 60%나 급감한 하루 170만~180만 배럴 수준으로 생산량을 대폭 낮췄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 역시 저장고가 가득 차면서 생산 설비 가동을 줄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터미널을 통해 하루 230만 배럴을 우회 수출하며 혈로를 뚫고 있으나, 평소 걸프만을 통해 쏟아내던 하루 600만 배럴의 물량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풀이된다.

싱가포르 소재 자산운용사 8VantEdge의 스테파노 그라소(Stefano Grasso) 시니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유조선 수급이 완전히 끊기면서 남은 지상 저장 시설마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라며 "공급망 마비가 길어질수록 국제 유가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뚫고 수직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에너지 방어선' 9개월… 가격 상한제 카드 만지작


국내 에너지 수급 상황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전국 9개 비축기지에 약 9600만 배럴의 국가 비축유를 확보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권고 기준인 90일을 세 배 이상 웃도는 수치로, 외부 수입이 완전히 단절되어도 약 270일간 국내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단순한 물량 확보보다 '단가 폭등'을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고착화할 경우 199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던 '석유 제품 가격 상한제'를 30년 만에 재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고유가가 민생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정부가 직접 개입해 차단하겠다는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비축유는 물량을 보장할 뿐 가격을 결정하지 못한다"라며 "수입 단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유류세 추가 인하와 상한제 도입 등 전례 없는 입체적 대응이 논의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시아·유럽 직격탄… '190달러 항공유'가 불러온 공급망 비명


글로벌 지표물인 브렌트유는 지난 한 주 동안에만 30% 폭등하며 6년 만에 가장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특히 중동 원유의 직접적인 지표가 되는 아부다비 무르반(Murban)유 선물은 배럴당 103달러, 오만유는 107달러를 돌파하며 이미 100달러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중국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의 원유 선물 역시 109달러 선을 형성하며 시장의 공포를 반영했다.

이러한 에너지 대란은 물류비용의 폭발적인 상승으로 전이되고 있다. 유럽연합(EU) 항공유 수입량의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탓에, 서북유럽 항공유 가격은 지난 5일 톤(t)당 1528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배럴당 환산 시 190달러를 넘어서는 수치로, 2008년 이후 최고치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연료 수출을 통제하고 비축유 방출을 서두르는 등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든 상태다.

통제권 회복이 관건… '장기전' 대비한 포트폴리오 재편 시급


미국은 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CNN을 통해 현재의 유가 상승을 '일시적인 공포 프리미엄'으로 규정하며 몇 주 내 정상화를 자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또한 유가가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의 시각은 냉정하다. 네덜란드 ING 그룹의 워렌 패터슨(Warren Patterson) 원자재 전략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조치가 이란의 선박 공격 능력을 조기에 무력화하지 못할 경우, 2분기 내내 유가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어렵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는 단발성 가격 변동을 넘어 에너지 수입국의 수입선 다변화와 비상 대응 체계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 회복 속도에 따라 세계 경제가 'V자형' 반등을 꾀할지, 아니면 장기 저성장의 늪으로 빠질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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