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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의 '비밀 집사' 엡스타인이 설계한 상류층의 덫... 게이츠와 앤드루 왕자는 왜 침묵하나

전용기 로리타 익스프레스 90회 운항의 실체와 조로 목장의 살인 의혹... 전 세계 0.1퍼센트 인맥 창구의 추악한 민낯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사진=로이터

소녀 매춘과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된 뒤 2019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 자산가 제프리 엡스타인을 둘러싼 파문이 전 세계 정재계를 집어삼키고 있다. 이른바 '엡스타인 문서'라 불리는 비밀 기록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매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연례총회인 다보스 회의가 그가 인맥을 구축하고 범죄의 망을 넓히는 주요 무대로 활용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일본 경제지 니케이가 지난 2월 2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 사법당국이 공개한 전자우편과 엡스타인의 야후 계정을 분석한 결과 그는 스스로를 다보스의 컨시어지(concierge, 비밀 집사)라 칭하며 세계적인 거물들 사이를 중개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비롯한 억만장자들과 정부 고관들과의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특히 빌 게이츠는 관련 의혹이 불거진 직후 인도에서 예정되었던 인공지능 서밋 강연을 전격 취소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보스를 뒤흔든 검은 인맥과 서머스의 거래


전 미국 재무장관인 로런스 서머스 역시 엡스타인과의 부적절한 교유 관계가 드러나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엡스타인은 서머스 전 장관의 다보스 회의 여정을 조정해 주는 대가로 자신의 지인 여성을 세계경제포럼의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 추천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노골적인 청탁을 주고받았다. 또한 보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 총재 역시 엡스타인과 수차례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포럼 측은 현재 독립적인 조사 위원회를 구성해 실태 파악에 나선 상태다.

로리타 익스프레스 90회 운항과 앤드루 왕자의 체포


영국에서는 엡스타인의 전용기인 로리타 익스프레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항공 기록에 따르면 이 전용기는 런던 인근 스탠스테드 공항을 무려 90회나 오갔으며, 이 중 15회는 엡스타인이 2008년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의 기록이었다. 이와 관련해 찰스 3세 국왕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가 지난 19일 영국 경찰에 전격 체포되었다. 그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무역 특사로 재직할 당시 엡스타인에게 기밀 정보를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어 영국 왕실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조로 목장의 살인 의혹과 아폴로 최고경영자의 위기


미국 뉴멕시코주에서는 엡스타인 소유였던 조로 목장을 중심으로 충격적인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당국은 인신매매로 끌려온 외국 국적 여성 2명이 목장 부지에 살해된 채 매장되었다는 제보를 토대로 살인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뉴멕시코주 의회는 16일 전원일치로 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의하며 1990년대 초반부터 묵인되어 온 권력층의 성범죄 실체를 파헤치기로 했다. 한편 미국 투자회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마크 로원 최고경영자 또한 엡스타인과 장기간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정황이 발견되어 미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권력층의 특권 의식과 무너진 도덕적 경계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자산가의 일탈을 넘어 전 세계 특권층이 어떻게 범죄와 유착하고 서로를 보호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모순의 단면이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다보스 회의가 범죄의 창구로 변질되었다는 의혹은 글로벌 리더들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엡스타인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문서들이 하나둘씩 해독될 때마다 얼마나 더 많은 정재계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의를 향한 수사의 칼끝이 이제야 비로소 견고했던 특권층의 장벽을 뚫고 그 심부를 향하고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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