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담판 벌였지만 '중국 측 수요'엔 물음표…"성능 낮춘 칩, 베이징은 더 이상 원치 않아"
美 안보 매파 반발 속 '화웨이 자립' 맞물려 진퇴양난…500억 달러 시장 복귀 '안갯속'
美 안보 매파 반발 속 '화웨이 자립' 맞물려 진퇴양난…500억 달러 시장 복귀 '안갯속'
이미지 확대보기"짐작조차 못 하겠다"…젠슨 황이 마주한 '베이징의 딜레마'
4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젠슨 황 CEO는 미 의회의사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주력 AI 칩인 'H200'의 판매 제한을 완화할 경우 중국 당국이 자국 기업의 구매를 허용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우리는 알 수 없다. 전혀 단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황 CEO의 이 같은 발언은 3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 직후 나왔다. 그는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수출 통제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이 H200의 중국 판매 허용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의 기대감이 고조된 상황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황 CEO는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그는 상원 은행위원회 비공개 회의에 참석하기 전 "우리는 중국에 판매하기 위해 칩의 성능을 저하시킬 수 없다. 그들은(중국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They won't accept that)"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규제가 풀리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 중국 시장의 눈높이와 기술 자립 의지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엔비디아가 미국의 안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성능을 낮춘 제품을 내놓더라도, 중국이 이를 굴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기술적 효용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는 'H20 사태'에서 현실화된 바 있다. 지난여름 엔비디아는 미국의 수출 통제 기준을 간신히 충족하도록 성능을 낮춘 저사양 칩 'H20'의 판매 승인을 획득하고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 베이징 당국은 즉각적으로 자국 기업들에게 H20 구매를 기피하고, 대신 화웨이 등 중국 토종 기업이 제조한 프로세서를 사용할 것을 강력히 종용했다. 황 CEO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은 이 같은 뼈아픈 경험에서 비롯된 현실적 공포가 깔려 있다.
트럼프와의 담판, 그리고 여전한 워싱턴의 '안보 강경론'
황 CEO는 이번 워싱턴 방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며 대중 수출 재개를 위한 명분 쌓기에 주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여기 있기를 원할 때마다 워싱턴에 온다"며 친밀함을 드러냈다. 엔비디아 측은 미국의 과도한 수출 통제가 결과적으로 화웨이와 같은 중국의 '내수 챔피언' 기업들만 성장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논리로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의회 입법 과정에서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미 의회는 최근 필수 통과 국방 법안에서 엔비디아 등 칩 제조사들이 중국 등 적대국에 칩을 판매하기 전 미국 고객에게 우선권을 주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GAIN AI 법안' 조항을 제외했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마이크 라운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들(엔비디아)은 전 세계 고객을 원한다. 우리는 그 점을 이해한다"며 엔비디아의 입장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H200과 같은 첨단 칩의 중국 판매가 실제로 허용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워싱턴 내 대중국 강경파들의 반발이 거세다. 상원 은행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이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H200의 중국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중국의 군사력을 '터보차지(급가속)'하고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훼손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워런 의원은 앤디 킴 하원의원과 공동 서명한 이 서한에서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정부에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 기업이 민감한 기술을 판매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수출 통제 완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2022년부터 지속된 대중국 반도체 봉쇄 정책의 기조를 흔드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안보 매파들의 확고한 입장이다. 황 CEO가 마주한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들 역시 엔비디아의 이익 추구 욕구를 이해하면서도, 국가 안보 우려를 동시에 제기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500억 달러 시장의 신기루…'샌드위치' 신세 된 엔비디아
H200은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을 모두 지원하는 고성능 프로세서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출하가 시작됐다. 황 CEO에게 중국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500억 달러(약 73조 원) 규모의 시장"이다. 그는 지난달 블룸버그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중국 시장과 다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며 중국의 오픈소스 모델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만큼 중국 판매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엔비디아는 재무 전망에서 중국 데이터센터 매출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다. 지난 10월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회동 당시에도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Blackwell)' 칩의 저사양 버전 수출 승인 문제가 거론됐으나, 구체적인 성과 없이 무산된 바 있다.
지금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안보 규제와, 이에 맞서 '기술 자립'을 천명하며 미국산 칩 배제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 정부 사이에 끼인 형국이다. 미국이 규제를 풀어준다고 해도, 중국이 "성능이 떨어진 미국 칩은 필요 없다"며 문을 걸어 잠글 경우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 복귀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황 CEO가 트럼프와의 담판이라는 승부수를 던지고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불확실성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감의 발로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엔비디아가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최전선에서 겪고 있는 이 딜레마는, 단순한 기업의 영업 활동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겪고 있는 구조적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규제의 빗장을 푸는 열쇠를 쥔 트럼프와, 그 열린 문으로 들어올 손님을 막아서려는 시진핑 사이에서 젠슨 황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