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시총 5조 달러 돌파, TSMC는 '즐거운 비명'…AI 칩이 부른 '골드러시'
막대한 전력 소비·공급망 리스크 '그림자'…2nm·1.6nm '기술 초격차' 경쟁은 계속
막대한 전력 소비·공급망 리스크 '그림자'…2nm·1.6nm '기술 초격차' 경쟁은 계속
이미지 확대보기주로 생성형 AI와 거대 언어 모델(LLM), 데이터 센터의 고성능 컴퓨팅(HPC)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며 이 같은 수요 폭증을 이끌고 있다. 기존 거대 기술 기업부터 신생 스타트업까지, 모든 기업이 AI 야망을 실현할 핵심이 하드웨어 혁신임을 인지하고 최첨단 반도체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TSMC 같은 선두 파운드리는 물론 타워 세미컨덕터 등 전문 기업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생태계 전체에 막대한 성장과 전략적 변화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기술의 시련…AI 미래 설계
이번 슈퍼사이클을 이끄는 AI 칩은 기존 범용 프로세서(CPU)와는 궤를 달리하는 전문 엔지니어링의 산물이다. 순차적 작업에 맞춰진 CPU와 달리, 현대 AI 가속기는 복잡한 AI 모델 훈련과 추론에 필수적인 수백만 개의 연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대규모 병렬 계산'에 특화돼 있다.
엔비디아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의 텐서 코어와 트랜스포머 엔진, 구글 아이언우드(Ironwood) TPU의 텐서 연산, 특정 워크로드에 맞춰 전력 소비 대비 성능을 극대화한 주문형 반도체(ASIC)와 엣지 AI를 위한 신경망 처리 장치(NPU) 등이 대표 사례다.
이 경이로운 칩 제조에는 3나노(nm), 2나노 등 최첨단 공정이 쓰인다. 칩 하나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속도와 전력 효율을 극대화한다. 파운드리 선두 주자 TSMC가 이 분야를 이끌고 있으며, 엔비디아는 블랙웰과 루빈(Rubin) GPU용 3nm 웨이퍼 생산량을 50% 늘려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2025년 말에는 TSMC, 삼성, 인텔 등 3대 웨이퍼 제조사 모두 2nm 양산에 돌입할 전망이다.
또한 방대한 데이터를 AI 모델에 공급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AI 학습용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 필수적이며, 여러 칩렛과 HBM을 중간 기판에 배열해 데이터 병목을 해소하는 TSMC의 CoWoS(Chip-on-Wafer-on-Substrate), SoIC(System-on-Integrated-Chips) 같은 첨단 패키징 기술 역시 AI 칩 구현에 필수다.
AI 연구 커뮤니티와 업계 전문가들은 AI를 반도체 부문 '혁신의 중추'로 보며 크게 낙관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낙관론은 시장 변동성과 더불어, 특히 고급 부품과 HBM에서 2025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수요-공급 불균형에 대한 우려와 공존한다.
기업의 체스판…권력 역학의 변화
AI 칩 수요 급증은 업계의 경쟁 구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생산 능력 확보와 공급망 통제는 기술 혁신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최대 수혜자는 단연 엔비디아다. AI 가속기 시장의 70~90%를 장악한 엔비디아는 H100과 블랙웰 GPU의 '매우 강력한 수요'에 힘입어 2025년 11월, 기업 가치 5조 달러(약 7335조 원)라는 역사에 남을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독주에 맞선 거대 기술 기업들의 반격도 거세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 클라우드 생태계에 맞춘 독자 칩(구글 TPU 외 아마존 트레이니움(Trainium), 마이크로소프트 아테나(Athena) 등)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들이 2026년 AI 인프라에 지출할 비용만 총 4000억 달러(약 586조 원)가 넘을 전망이다. 구글은 2025년 11월 7세대 TPU '아이언우드'를 공개했다. 이 칩은 이전보다 4배 향상된 성능을 내세우며 수직 통합 의지를 과시했다.
스타트업에게는 기회와 장벽이 공존한다. 높은 인프라 비용이 부담이지만, '서비스형 GPU'의 등장은 초기 투자 없이도 컴퓨팅 성능에 접근할 길을 열어주었다.
TSMC·타워, 낙수 효과에 '전례 없는 성장'
파운드리와 전문 제조사들은 전례 없는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약 90%를 생산하는 TSMC는 2025년 전체 생산 능력의 28% 이상을 AI 칩에 할당할 정도로 수요가 폭증했다. 이 때문에 첨단 공정 생산능력 부족이 공급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가운데, TSMC는 2025년 3/5nm 공정 가격을 5~10%, CoWoS 패키징 가격은 15~20% 인상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수요 충족을 위해 대만에 최대 12개의 신규 공장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워 세미컨덕터 역시 고속 데이터 센터에 필수적인 실리콘 포토닉스(SiPho)와 실리콘 게르마늄(SiGe) 기술을 무기로 100억 달러(약 14조 원) 가치의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2024년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돌파한 타워의 SiPho 매출은 2025년에 다시 두 배로 증가, 2025년 4분기에는 연간 3억 2000만 달러(약 4690억 원)를 넘어설 기세다. 회사는 3억 달러(약 4400억 원)를 추가 투자해 이 분야의 경쟁 우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 외에도 AMD가 MI300 시리즈로 추격에 나섰으며, SK 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도 AI 가속기의 '필수 연료'인 HBM 생산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AI 슈퍼사이클, 산업 전반에 파장
2025년의 AI 칩 수요는 시장 현상을 넘어 넓은 파장을 낳고 있다. NPU, ASIC 등 특정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칩 설계가 가속화되고, 2nm와 1.6nm 공정과 3D 스태킹 기술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AI가 반도체 설계 자동화에 직접 참여하며 개발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있으며, 엣지 AI의 보급은 스마트폰, 자동차, IoT 기기에서 실시간 AI 구현을 앞당기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도 짙다. 소수 기업에 고도로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은 지정학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HBM과 첨단 패키징의 수급난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특히 첨단 AI 칩에 대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한이 촉발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각국의 기술 자급자족 경쟁을 가속화하며 공급망의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에너지 소비다. AI의 엄청난 연산력은 데이터 센터의 전력 사용량을 급증시키고 있다. 고성능 AI 칩 하나가 700~1,200와트(W)의 전력을 소비하며, 2028년이면 미국 내 데이터 센터가 국가 전체 전력의 6.7%에서 최대 12%를 소비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전력 효율이 높은 칩 설계와 첨단 냉각 시스템 혁신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초순수와 급격한 하드웨어 노후화로 인한 특수 전자 폐기물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일각의 'AI 거품' 우려에도, 많은 분석가들은 이번 슈퍼사이클이 닷컴 버블과 달리 수익성 있는 거대 기업들의 실제 인프라 투자에 기반하고 있어 성장세가 더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본다. 특히 하드웨어가 AI 역량의 핵심 차별점으로 재부상하고, 반도체가 단순한 상업적 상품을 넘어 '전략 국가 자산'으로 격상된 점은 과거의 기술 혁명과 구별하는 지점이다.
지평선 너머…AI 칩의 미래
AI 칩의 진화는 계속될 전망이다. 단기(2025~2030년) 2nm, 1.6nm 공정이 보편화되고 3D 패키징과 칩렛 통합이 본격화되는 한편, AI를 칩 설계와 제조에 핵심 도구로 활용할 것이다. 훈련(Training) 중심에서 엣지(Edge) 기기에서의 추론(Inference) 중심으로 칩의 초점이 이동할 것도 주목할 변화다. 2030년 이후에는 뇌 구조를 모방한 뉴로모픽 칩이나 실리콘을 대체할 스핀트로닉스 소자(Spintronic devices), 나아가 양자 소재에 기반한 비(非)실리콘 전환 실험과 양자 컴퓨팅과의 결합까지 나온다.
이에 따라 2025년 4억 대 이상 출하가 예상되는 '생성형 AI 스마트폰'을 비롯해 자율주행차, HPC, 헬스케어 등 엣지 AI 애플리케이션이 만개할 것이다. 2030년 세계 AI 칩 시장은 약 4530억 달러(약 66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물론 원자 수준 제조의 막대한 비용, 끝없는 전력 소비와 발열, 메모리 병목 현상, 환경 발자국 등은 여전히 거대한 도전 과제로 남아있다.
새로운 실리콘 시대의 서막
AI 칩 수요 급증은 기술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며 'AI 슈퍼사이클'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만들고 있다. 하드웨어가 다시금 AI 경쟁의 '핵심 차별 요소'로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전문화된 AI 아키텍처로의 전환, TSMC와 타워 세미컨덕터 같은 제조사의 핵심 역할, 그리고 엔비디아와 하이퍼스케일러 간의 치열한 패권 다툼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거대한 혁신은 공급망 리스크, 막대한 에너지와 물 소비, 지정학적 갈등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동반한다. 이에 따라 AI 칩 생산 능력 확보는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주권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2nm 이하 초미세 공정과 첨단 패키징 기술의 진화, 그리고 에너지 효율성이라는 절박한 과제를 업계가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AI 혁명 그 자체만큼이나 그 기반이 되는 하드웨어의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고효율 설계와 냉각 기술의 혁신, 국제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국가 간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