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단 HBM3E 인증 최대 1년 지연…SK·마이크론에 2026년 물량 선점 '고전'
HBM4 경쟁, SK '기술·프리미엄' 대항 삼성 '1c D램·가격 공세'로 차별화
HBM4 경쟁, SK '기술·프리미엄' 대항 삼성 '1c D램·가격 공세'로 차별화
이미지 확대보기삼성전자의 위기는 12단 HBM3E의 공급 지연에서 현실화됐다. 삼성은 2025년 4분기에 들어서야 엔비디아를 향한 12단 HBM3E 출하를 시작했다. 해당 분기 예상 출하량은 수만 대 수준에 그쳐 경쟁사들에 비해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보다 6~12개월 늦어진 셈이다.
경쟁사들은 삼성보다 한발 앞서 나갔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하반기 12단 HBM3E 양산에 들어갔으며, 엔비디아·AMD 등 주요 고객과의 선약(선선정)에 성공해 2026년까지 물량을 사실상 선점했다. 마이크론 역시 2025년 초 성공적으로 인증을 통과하며 한 해 내내 강력한 매출과 수익 성장을 이끌었다. 삼성은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사에 HBM3E를 공급하기 시작했음에도 엔비디아의 까다로운 발열 및 인증 기준을 충족하는 데 수개월간 고전했다.
약 18개월에 걸친 반복적인 테스트와 수정을 거쳐 삼성전자는 2025년 하반기에 마침내 모든 인증 관문을 통과했다. 이로써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이어 엔비디아의 세 번째 HBM3E 승인 공급업체로 합류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이미 2026년까지 판매 물량을 대부분 확보한 상태여서 삼성은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더욱이 고질적인 발열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 않아 삼성 제품은 여전히 경쟁사보다 온도가 높아 액침 냉각(liquid-cooled) AI 서버 연동이 필수적이라고 외신은 지적했다.
'가격' 칼 빼든 삼성, HBM4는 '1c 공정' 직행
궁지에 몰린 삼성이 꺼내든 반격 카드는 '가격'이다. 2026년 HBM3E의 평균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은 이미 HBM3E 12단 스택 제품의 최대 30% 가격 인하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공격적인 가격 정책은 2026년 본격 시장 형성이 예상되는 HBM4 경쟁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HBM4는 HBM3E보다 30~60%까지 가격 인상 요소가 있던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삼성은 HBM4 초기 견적부터 SK하이닉스·마이크론보다 6~8%가량 저렴하게 제시하며 추격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HBM4 시장 선점을 위한 '삼국지'는 이미 시작됐다. 삼성은 HBM4 개발 전략에서 모험을 택했다. 이전 세대 1b D램 노드에서 수율 부진과 시장 신뢰 저하를 만회하기 위해 차기 HBM4에서 또 다른 차질을 피하려고 더 진보된 1c D램 공정 직행 전략을 선택했다. 2025년 하반기 SEDEX 등 대형 전시에서 '커스텀 파운드리/맞춤형 HBM4' 전략을 공식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삼성의 HBM4 인증 결과는 11월 중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1c D램으로의 급격한 전환은 잠재적인 수율 불안정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SK '프리미엄'·마이크론 '고성능'…HBM4 각축전
반면 SK하이닉스는 9월 HBM4 양산 준비가 완료됐다고 발표하며 '신중한 접근' 방식을 공식화했다. 신중한 방식을 고수해 수율·온도 안정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베이스 다이에 TSMC의 12nm 공정을 적용하고, 그 위에 자사의 1b D램을 적층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구조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는다. 다만 HBM4 공정의 구조적 변화로 전체 생산 비용 상승을 불렀다.
당초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HBM4 가격이 이전 세대보다 60~70% 높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최근 추정치는 HBM4의 가격 인상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HBM4의 원가는 이전 제품보다 약 30% 높고, 추가되는 TSMC 로직 다이가 전체 생산 비용의 약 20%를 차지한다. 2026년 HBM4 공급 경쟁이 심화되면 SK하이닉스의 가격 인상률은 20% 내외로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HBM 시장 지배력 수성을 위해 수익성 압박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도 SK하이닉스는 '초고성능+프리미엄 가격' 모델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론은 기술력 과시에 나섰다. 최근 2025년 4분기 12단 HBM4 샘플 출하를 시작했다고 발표하며,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의 공식 사양(8Gbps)을 훌쩍 뛰어넘는 2.8TB/s의 대역폭과 최대 11Gbps의 속도를 구현했다고 밝혔다. 이 제품을 앞세워 엔비디아 등 고객사 공급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 역시 비슷한 사양의 HBM4를 선보이며 2026년 1분기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공격적인 가격 정책에도 아직 엔비디아로부터 HBM4 공급에 대한 공식 승인을 받지는 못했다.
마이크론은 2026년 자사의 HBM 시장 점유율이 2025년을 초과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차세대 HBM4 경쟁 구도 변화가 자사 입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HBM4는 공정·적층 난이도가 어려워 생산 단가가 급등했으나 AI 수요 폭발로 HBM3E보다 30~60% 오른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HBM이 고객사별 맞춤화가 매우 중요했던 만큼 '가성비+물량 공세'를 노리는 삼성과 '기술 최고가+선점'을 노리는 SK하이닉스 전략의 명확한 분화가 예상된다.
AI 산업 수요와 구조적 공급 병목현상이 여전해 SK하이닉스·삼성전자 모두 2026년 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로는 SK하이닉스, 중기적으로는 삼성의 점유율 확대가 예상된다고 분석한다. HBM 왕좌를 되찾으려는 삼성의 가격 승부수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양강 구도를 흔들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삼성의 대규모 가격 인하 전략이 효과를 내려면 인증, 수율, 품질 이슈의 빠른 해소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변동성도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