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확장법 232조' 카드 꺼내자 글로벌 공급망 교란 심화
TSMC 의존도 높은 美 빅테크 직격탄…"관세 실효성 없다" 분석
TSMC 의존도 높은 美 빅테크 직격탄…"관세 실효성 없다" 분석

2025년 1월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전면적인 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세계 시장을 흔들었다. 당시만 해도 업계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을 포함한 대만산 제품의 약 70%가 관세 영향권을 벗어날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1962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 특정 품목인 반도체를 정조준하며 기조를 급격히 바꿨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을 키우고 공급망 자립을 강화하겠다는 목표 아래, 최대 300%에 이르는 관세 가능성까지 경고하며 전례 없는 압박에 나섰다.
조사 지연에 美·대만 협상 '올스톱'…불확실성만 증폭
트럼프 대통령은 조사를 신속하게 마무리 짓겠다고 공언했지만, 미국 상무부는 아직 공식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여파로 양국 간 핵심 공급망 협상은 사실상 중단됐다. 미국 정부가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대만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반도체 협력 논의는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고강도 압박과 불확실성에도 시장은 의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는 2일(현지시각) 전했다. 초기 충격이 지난 후, 고객사들은 관세가 부과되기 전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주문을 넣고 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들은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며 생산 라인을 가동 중이다.
이번 조사는 대만 반도체 기업들을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충하라는 압박에 직면한다면, 비용이나 인재 확보, 규제 준수와 같은 통상적인 경영 리스크를 훨씬 뛰어넘는 변수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만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의 절반을 미국으로 이전하라는 요구에 대만 정부와 업계는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최근 대만의 청리춘(鄭麗君) 부총리는 "생산 능력의 50대 50 분배는 협상 의제가 될 수 없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만의 강력한 산업 생태계와 공급망 집적 효과를 고려할 때, 무리한 생산 이전은 효율성과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2선 파운드리 겨눠도…美 기업 비용 전가 '자충수'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는 발언은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반도체 관세 조치는 그 칼날이 미국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엔비디아, AMD, 퀄컴, 인텔 등 미국의 대표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들은 절대적으로 TSMC에 의존하는 구조다.
설령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TSMC는 이미 미국 애리조나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관세 면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앞으로 생산 능력의 80% 이상이 여전히 대만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 물량 역시 미국의 핵심 기업들이 사용하는 만큼 면제 대상으로 지정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략은 가장 중요한 표적인 TSMC를 빗겨 가면서 실효성을 크게 잃을 수 있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만약 관세율이 비교적 낮게 책정된다면, 기업들이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등 대체 생산지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
만약 관세의 초점이 미국에 투자 기반이 없는 뱅가드 국제반도체(VIS),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UMC), 파워칩 반도체 제조(PSMC) 등 2선급 파운드리에 맞춰지더라도 효과는 미미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성숙 공정 칩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미국 IC 설계 고객사들의 원가 부담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져, 그 피해를 고스란히 미국 기업들이 떠안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시장의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반도체 조사를 끝까지 밀어붙일지, 아니면 한발 물러설지에 쏠린다. 정책 강행은 세계 무역 전선을 확대하고 보복 관세를 유발할 수 있으며, 전자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 소비자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일부 늘리는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만의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미국 기업에 피해를 주는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양국 간 반도체 협력 동력이 약화되고 미국의 첨단 반도체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