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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가능성은?

미국, '선 휴전' 압박 철회…러시아 '선 평화협정'에 동조
우크라이나·유럽, "침략에 보상 안돼" 원칙 고수하며 반발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난 후 입장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난 후 입장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이 급선회하면서 전쟁 종식의 가능성이 또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인명 피해 감소를 목표로 '선(先) 휴전'을 압박해 온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돌연 태도를 바꿔 러시아가 주장하는 '선(先) 평화협정'을 지지하고 나서자, 영토를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휴전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갈등이 깊어지며 전쟁이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올봄부터 백악관은 러시아를 향해 최소 30일간의 전투 중단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휴전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으며, 러시아가 불응할 때는 모스크바는 물론 러시아산 원유를 사는 인도 같은 나라에도 제재를 가하겠다며 강력한 압박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난주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뒤 미국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투를 계속하면서 종전 협상을 벌이는 러시아의 구상을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폭격이 계속되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어떤 휴전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기존 정책을 전면 폐기하겠다고 못 박았다. 심지어 러시아군이 점령하지 못한 도네츠크 북부(크라마토르스크·슬로뱐스크 포함)를 러시아에 넘기는 안에도 동의했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자포리자·헤르손 남부 전선을 동결하는 것을 '양보'로 내세웠다. 러시아로서는 전장이 아닌 협상장에서 승패를 결정지을 기회를 잡은 셈이다.

◇ '시간은 우리 편'…휴전 거부하는 푸틴의 속내


미국의 태도 변화는 전쟁을 계속하려는 러시아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푸틴 대통령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지구전으로 끌고 갈 생각이며, 2022년 침공 뒤 내세웠던 젤렌스키 정권 축출, 우크라이나군 규모 제한, 나토(NATO) 가입 저지 등 최대 요구 조건을 조금도 바꾸지 않는다. 올여름에도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감수하며 돈바스 지역 마을들을 점령하고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까지 진격하는 등 공세를 늦추지 않는다. 러시아 처지에서 휴전은 현재의 1,000km 전선을 굳힐 뿐이어서, 오히려 종전 협상으로 영토 확보를 밀어붙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만약 협상이 실패하면 푸틴은 그 책임을 젤렌스키에게 돌리며 국제 여론전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큰 좌절감과 함께 외교적으로 고립될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등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은 워싱턴을 찾아 러시아의 무력 침공에 따른 영토 점령을 정당화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이들은 '러시아 압박 → 휴전 → 협상'이라는 기존 길잡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재차 촉구하는 한편, 최근에는 '살상을 멈추라(stop the killing)'는 새로운 구호로 트럼프를 설득하고 있다.

◇ '한국식 정전모델' 대안 될까…푸틴은 '완전 흡수' 목표


전쟁을 멈출 대안으로 1953년 한국의 정전협정 모델이 떠오른다. 공식적인 평화 조약 없이 비무장지대(DMZ)를 만들어 80년 넘게 전쟁 상태를 멈춘 이 모델을 두고, 단기적으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출구로 본다. 그러나 어떤 우크라이나 정부도 러시아의 영토 점령을 공식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운 데다, 결정적으로 푸틴 대통령 스스로 임시 분단이 아닌 완전한 우크라이나 흡수를 목표로 삼아 '한국 모델'을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휴전 모델을 원하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종전 협정을 압박하며 맞서는 구도다.

앞으로 전황은 한층 더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올가을과 겨울, 미국의 압박 카드가 사라지면서 러시아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우크라이나가 짊어질 군사와 심리 부담은 무거워질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휴전과 종전 방식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분열이 깊어지며 나토 안에 균열이 생길 위험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모전을 감수하며 전쟁을 계속하거나 ▲국내 정치적으로 큰 반발을 부를 영토 포기 협상을 받아들이거나 ▲유럽이 이끄는 평화협상을 따로 추진하는 등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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