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관세 발효 시점을 이달 말로 또다시 연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유예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1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행정명령을 통해 60개국 이상에 대한 보복관세 발효일을 당초 9일에서 다음달 1일로 3주가량 늦췄다.
이 조치는 인도와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과의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일본과 한국 등은 여전히 ‘압박 대상국’으로 분류됐다.
◇ “이번엔 진짜다”…트럼프, 정치적 후퇴 우려에 단호한 입장
트럼프는 지난 4월 2일 처음으로 전 세계 60여개국을 대상으로 10~50%의 고율관세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시장 불안이 커지자 일괄 10%로 하향 조정하고 ‘90일 유예’를 선언했지만, 이달 9일 해당 기간이 종료되면서 다시 원래의 고율로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 한국·캐나다 압박 속 EU는 디지털세 철회로 ‘성의 표시’
이번 연장 조치는 한국과의 협상이 4월 대선 일정 등으로 지연된 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한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8월 1일까지 무역장벽에 대한 실질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최대 35%까지 관세를 인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나다에도 같은 시한을 부여하면서 무역장벽 해소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미국의 공세에 일부 국가는 실질적인 양보에 나서고 있다. EU는 디지털세 도입 계획을 철회하며 미국 측 요구를 수용했고 이에 따라 양측 간 협상은 빠르게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EU 고위 관계자는 “8월 1일 전까지 협상 틀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또 미룰 것” 회의론도 여전…中 협상, 12일까지 시한
그러나 시장과 일부 외교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워싱턴 외교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물가 관리나 금융시장 불안을 이유로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관세 발효를 다시 연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외교관은 “이처럼 동시에 다수 국가와 양자협정을 체결하는 건 시간도 부족하고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반(反)중국 조항’은 민감한 쟁점이다. 일부 국가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상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경우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협상 시한은 오는 12일로 설정돼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세를 지렛대로 활용 중인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사실상 ‘모두를 압박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숀 스파이서 전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에게 있어 관세는 단순한 정의의 문제”라며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인데 왜 아무 조건 없이 개방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