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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원전 확대 위해 ‘방사선 기준 완화·규제기관 독립성 축소’ 추진

미국 뉴욕주 뷰캐넌의 허드슨강 동쪽 강가에 자리한 인디언포인트 원자력 발전소.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뉴욕주 뷰캐넌의 허드슨강 동쪽 강가에 자리한 인디언포인트 원자력 발전소.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확대하기 위해 방사선 노출 기준을 완화하고 핵안전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약화하는 행정명령들을 준비 중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WP가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백악관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과도한 위험 회피로 인해 원전 인허가가 지연되고 있다”며 관련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이 검토 중인 4개의 행정명령 초안에는 신규 원전 승인 절차 간소화, 방사선 노출 허용 기준 완화, NRC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 행정명령 초안은 “NRC는 방사선 노출에는 안전 기준이 없으며 노출량에 비례해 피해가 발생한다는 잘못된 모델을 기반으로 규제를 만들어왔다”며 이 기준을 18개월 이내 개정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는 원전 사업자들이 더 간단한 안전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 건설 비용을 줄이고 인허가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계획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과학적 근거 없이 안전 기준을 바꾸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조이스 코너리 전 국방핵시설안전위원회 위원장도 WP와 인터뷰에서 “핵 안전을 평생 다룬 전문가들보다 전문가가 아닌 행정부 관리들이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원자력 정책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9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며 1978년 이후 NRC가 승인한 신규 원자로는 5기뿐이고 실제 건설된 것은 2기에 그친다. 백악관은 이같은 지연이 ‘지나친 안전 우선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초안에는 오는 2050년까지 미국의 원전 전력을 4배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포함돼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데이터센터에 첨단 원전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를 위해 에너지부가 AI용 원전 건설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올해 2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서명한 별도의 행정명령에 따라 앞으로 NRC의 주요 결정 사항은 백악관 예산관리국 산하 정보·규제업무국(OIRA)을 통해 검토되고 이 기관이 NRC의 결정을 뒤집을 권한도 갖게 된다. 이에 대해 WP는 “앞으로 어떤 안전 기준이 완화됐는지조차 대중이 알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독립기관들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복원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이는 40년 가까이 논의돼온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이같은 규제 완화 움직임이 오히려 산업 신뢰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코너리 전 위원장은 “공공이 규제가 과학이 아닌 정치와 산업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느끼게 되면 오히려 원전 인허가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지난 40년간 원전 설비 용량을 두 배로 늘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중국은 같은 성과를 10년 만에 이뤘다. 최근 설치된 전 세계 원전의 87%는 중국과 러시아 설계라는 점도 백악관이 제시한 배경 중 하나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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