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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냐 내전이냐" 美 대선 '벼랑 끝 대결'

박정한 기자

기사입력 : 2024-10-30 13:29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인 미국.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인 미국. 사진=로이터

미국 대선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가운데, 전례 없는 극단적 대립으로 미국 사회가 폭발 직전의 화약고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은 단순한 우려를 넘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AP-NORC의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인 76%가 2024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폭력적 시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도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플로리다 대학 선거연구소에 따르면, 10월 28일 기준으로 이미 3800만 명 이상이 사전투표를 마쳤다. 특히 2020년 대선의 격전지였던 경합 주들에서는 이례적인 보안 조치가 눈에 띈다. 조지아주의 경우, 주요 투표소에 드론과 무장경력을 동원하는 등 전례 없는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될 것 같다"라는 한 유권자의 절망적인 목소리는 현재 미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은 이러한 불안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유권자의 66%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할 경우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67%는 주나 지방 공무원들이 선거 결과 인증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73%의 응답자가 사법 제도를 통한 선거 결과 뒤집기 시도를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대결은 이미 정책 경쟁을 넘어선 지 오래다. 양측은 상대를 "나라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 규정하며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일론 머스크의 트럼프 지지 선언으로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등록 유권자의 대다수인 86%는 개표가 완료되고 법적 문제가 해결되면 패배한 후보가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수년간 공개적으로 부인해온 트럼프를 2024년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결과를 받아들이고 승복할 것으로 예상하는 응답자는 33%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민주당 유권자들과 공화당 유권자들의 약 3분의 1은 트럼프가 패배할 경우 결과를 거부할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유권자의 77%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패배할 경우 승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등록 유권자의 약 절반은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반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서는 43%가 위협으로, 44%가 이점으로 평가하며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인이나 선거 공무원을 겨냥한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려 82%의 응답자가 이에 대한 걱정을 표명했다.

선거 과정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심각한 수준이다. 등록 유권자의 26%가 전국적 투표 집계의 정확성을 의심하고 있으며, 공화당 유권자의 56%는 여전히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은 2020년 선거 이후의 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 사회의 마지막 통합 구심점으로 여겨져 온 종교계마저 이 전례 없는 분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는 점이다. 바나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목회자의 20%만이 정치와 시민 참여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다고 답했다. 이는 현재의 갈등이 종교적 가치나 신념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펜실베이니아의 한 교회 목사는 "우리 교회는 지난 40년간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모든 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봉사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2년간 교인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주일 예배 참석률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는 정치적 분열이 신앙 공동체의 근간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과거 인종차별이나 베트남 전쟁 등 첨예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화합의 메시지를 전파해왔던 종교계가 이번에는 오히려 분열의 한 축으로 변모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치유와 화해"를 주제로 한 특별 기도회를 진행하고, "정치적 차이를 넘어선 이웃 사랑"이라는 주제로 교구민 대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교인들 간의 정치적 갈등을 더욱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경합 주의 한 목사는 "화합을 위한 설교를 할 때마다 일부 교인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 교회를 떠나고 있다"며 좌절감을 표현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젊은 세대의 종교 이탈 현상이다. "교회가 더 이상 평화와 화합의 장소가 아닌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어버렸다"는 한 청년의 고백은 현재 미국 종교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종교계 관계자들은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이 젊은이들의 신앙생활 이탈을 가속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미국 사회의 분열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세대를 걸친 장기적 균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종교계의 위기는 미국 사회의 분열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지표다. 과거 남북전쟁이나 민권운동 시기에도 종교계는 사회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내부의 균열이 너무 깊다는 평가다. 한 종교사회학자는 "종교계가 사회 통합의 주체가 아닌 분열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현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미국 민주주의의 향방을 가를 중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매일 투표소가 가까워지는 게 극도로 스트레스"라는 한 유권자의 고백은 이번 선거가 얼마나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준다. 세계 민주주의의 이정표 역할을 해온 미국이 이 전례 없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낼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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