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암호화폐 관련 기업을 포함한 가상자산 업계가 막대한 자금력과 약 5200만 명의 가상자산 소유자를 무기로 11월 대선과 상하원 의원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가상자산 업계는 대체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암호화폐 산업 규제를 서슴지 않았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수세에 몰렸다. 바이든 대선 캠프는 뒤늦게 암호화폐 업계 측과 대화에 나서는 등 태도 변화를 보인다. 오는 11월 선거에서 암호화폐 업계 정치자금과 투자자들이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 시각) “암호화폐 업계가 대형 스캔들에서 벗어나 2024년 선거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대형 코인 관련 기업 3개가 연합으로 슈퍼팩을 결성하고, 1억5000만 달러(약 2071억원)의 자금을 모아 의회 선거 등에서 친(親)암호화폐 후보를 지원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 슈퍼팩은 대선전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암호화폐 관련 기업 대표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원에 나섰다고 NYT가 지적했다. 트럼프는 최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자택에서 암호화폐 관계자 수백 명이 참석한 만찬을 주최했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미국에서 약 5200만 명이 암호화폐를 비롯한 가상자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인 업계는 이들 유권자를 결집해 오는 11월 선거판을 흔들려고 한다고 NYT가 전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미국에서 전체 인구의 7%가량인 약 1800만 명이 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NYT에 따르면 코인베이스와 암호화폐 결제 기업 리플(Ripple), 암호화폐계의 큰손으로 통하는 벤처캐피털 안데르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가 슈퍼팩에 각각 5000만 달러씩 기부했다. 지난 3월에는 암호화폐계를 대표하는 최대 슈퍼팩인 페어셰이크(Fairshake)가 1000만 달러를 투입해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 뛰어든 반(反)암호화폐 성향의 케이티 포터 연방 하원의원 낙선운동을 전개해 그를 낙마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체로 반암호화폐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일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암호화폐 회계기준(SAB 121)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SAB 121은 고객을 위해 암호화폐 자산을 보유한 금융기관에 해당 자산을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기록하도록 규정했다. 트럼프는 “5000만 명의 암호화폐 보유자에게 셀프 커스터디(개인이 직접 보관·관리) 권리를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암호화폐 업계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최근 코인 업계와 관계 개선에 나섰다. 로 칸나 캘리포니아주 출신 민주당 하원의원이 7월 초 워싱턴 DC에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혁신을 위한 회의를 주최한다. 이 회의에 바이든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포브스는 더블록의 보도를 인용해 "바이든 진영은 암호화폐 시장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업계에 보여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블록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 캠프 관계자들이 최근 가상자산업계 주요 인사들과 만나 관련 정책 조언을 구했다.
트럼프 선거 캠프는 지난달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승인된 모든 가상화폐를 사용해 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비트코인·이더리움뿐 아니라 도지코인 같은 각종 '밈 코인'도 기부할 수 있게 했다.
트럼프는 지난 11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비트코인 채굴 산업을 지원할 것이며 남아있는 모든 비트코인은 앞으로 미국이 채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2021년 대통령 재임 당시 비트코인을 ‘사기 같다’고 했으나 이제 자신이 ‘암호화폐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