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이 글로벌 PC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단순히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물론, 향후 전체 PC 시장의 과반을 차지하겠다는 야심 찬 미래까지 제시했다.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 현장 인터뷰에서 “ARM의 PC 시장 점유율은 향후 5년 안에 5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PC용 ‘윈도’ 운영체제(OS)의 개발사 마이크로소프트(MS)도 ARM 기반 PC용 프로세서를 개발한 퀄컴과 손잡고 인공지능(AI) 기능에 특화된 ‘코파일럿 플러스 PC(Copilot+ PC)’를 발표한 바 있다.
심지어 이제는 AI 반도체 선도주자로 더 친숙한 엔비디아마저 자체적으로 ARM 기반 PC를 준비 중이다. 그간 PC 시장과 거리가 멀었던 ARM이 이토록 PC 시장을 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수십 년 동안 PC 시장은 인텔과 AMD로 대표되는 ‘x86’ 프로세서 기반 PC가 주류였다. 특히 MS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기반 OS인 윈도를 내놓으면서 ‘PC=x86 프로세서’라는 공식이 더욱 고착됐다.
반면, ARM은 저전력·고효율이라는 특징을 내세워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 시장을 중점으로 성장해 왔다. 인텔과 AMD도 저전력 x86 칩을 통해 모바일시장 진출을 노렸지만 전부 실패하면서 ‘ARM=모바일’이란 공식이 고착됐다. 애플의 A시리즈 칩, 퀄컴의 스냅드래곤, 삼성의 엑시노스 등 스마트폰 및 태블릿에 사용되는 각종 모바일 프로세서가 모두 ARM 기반 프로세서다.
ARM의 PC 시장 진출을 막던 ‘성능에서 x86에 뒤처진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애플의 ‘M 시리즈’ 프로세서와 MS, 아마존 등이 개발한 ARM 기반 서버용 칩 등으로 많이 나아졌다. 심지어 x86 PC의 최고 파트너였던 MS조차도 ARM 기반 PC용 윈도 개발에 공을 들이면서 기대를 거는 중이다.
ARM이 PC 시장을 노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새로운 시장 개척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모바일 시장은 이미 ARM 기반 프로세서 제품들이 시장을 점령해 더 이상 성장 여력이 크지 않다.
반면, x86 프로세서가 여전히 70% 이상을 차지하는 PC 시장은 ARM 입장에서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잠재력 있는 시장이다. 특히 대다수 업무 현장에서 문서작성, 콘텐츠 생산, 앱 개발 등의 업무에 여전히 PC를 사용하는 만큼, 꾸준한 수요가 약속되는 ‘기업용 PC’ 시장을 잡을 수 있다면 ARM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안정된 매출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미래 핵심 기술로 떠오른 ‘AI’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바로 PC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삼성전자가 NPU(신경망 처리 장치)를 내장한 갤럭시S24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AI 스마트폰’ 시장을 열었지만, 정작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는 첨단 생성형 AI 기능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모바일 기기들이 ‘생산성’보다는 ‘콘텐츠 소비’에 더 특화된 플랫폼이어서 ‘생산성 향상’에 특화된 생성형 AI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업무 현장에서 주로 쓰는 PC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사용자의 생산성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도 직결된다.
AI 기술이 미래 기술 산업의 핵심 화두는 물론, 기업 경쟁력의 척도로 떠오르는 요즘, 한계가 분명한 모바일 시장보다는 AI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PC 시장이 ARM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더욱 투자할 가치가 있는 셈이다.
물론, 인텔과 AMD 등 x86 진영도 약점이었던 전력 효율을 끌어올리고, NPU를 통한 자체 AI 기능을 더욱 강화하며 ARM의 PC 시장 진출에 맞설 채비에 나서고 있다. 향후 PC 시장의 50%를 차지하겠다는 ARM의 호언장담이 실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