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에서 '패널'이나 '패널 기판'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는 후공정(패키징 공정) 영역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블록처럼 조합하는 '칩렛 집적'과 칩 사이를 연결하는 기판 '인터포저' 형성 등에 사각형 유리나 수지 기판을 활용한다는 의미다.
첨단 반도체 수탁생산을 목표로 하는 라피더스는 2024년 4월, 일본 경제산업성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연구개발 테마에 칩렛 집적화 등 첨단 패키징을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라피더스는 600㎜ 각의 대형 패널로 제조하는 유리 인터포저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는 300㎜ 직경의 실리콘 웨이퍼를 사용하는 방식에 비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피더스는 세이코엡손 지토세 공장에 인접한 세이코엡손의 지토세 사업소를 임차하여 후공정용 클린룸을 구축하고 노광장비 등 제조 장비를 반입하여 패키징의 시제품 제작과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사업소는 프로젝터용 고온 폴리실리콘 TFT 액정(HTPS)의 생산 거점이었으며, 액정 패널 생산에는 석영 유리 기판을 사용했다.
유리 기판을 사용하는 제조 기술이 반도체 후공정으로 침투할 경우, 액정 공장의 노하우를 반도체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액정 공장 부지나 건물을 반도체용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은 최근 들어 회복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지만, 액정 시장은 여전히 전망이 밝지 않다. 대형 TV 수요 부진으로 액정은 회복이 쉽지 않으며, 소형 패널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잠식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후공정에 강한 부품 및 장비 업체들이 많이 존재하고, 패키징 기술에 능숙한 기술자들도 많아 세계 반도체 대기업들에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된다.
일본의 액정 공장이 세계 최첨단 반도체 패키징 개발 및 양산 기지로 거듭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라피더스의 대형 유리 인터포저 개발, 세이코엡손 지토세 사업소 활용 등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