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미국이 나토 방위비 분담금을 지나치게 많이 내고 있다며 나토 탈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새로운 이유가 더해져 논란이 되고 있다.
새로운 이유란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안보 동맹체가 나토인데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침공해도 자신이 재집권하면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점이다.
과거 대통령 재임 기간 중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해 친러시아 성향을 드러낸 바 있는 트럼프가 재집권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친러시아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과거 대통령 재직 시절 역시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안이란 점에서 한국에도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나토 핵심국의 ‘러시아 침공 용인’ 주장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가 최근 내놓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발언의 핵심은 ‘나토 동맹국들이 충분한 방위비를 내지 않으면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대목이다.
당연하게도 나토 회원국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유로존 국가들은 트럼프의 발언에 들썩이고 있다.
그가 지난 10일(현지 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공화당 내 대선 경선 유세에서 한 발언은 과거 나토 국가 정상들과 가진 회의에서 어떤 큰 나라의 지도자가 나토 내 재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을 경우 미국이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난 돈을 안 낸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대로 뭐든 하라고 할 것"이라고 답한 대목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나토 회원국에 대해서는 미국이 지원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침공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폭탄 발언을 한 셈이다.
나토의 재정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미국이 나토의 주적(主敵)인 러시아의 침공을 용인하는 발언이라서다.
나토 회원국 31개국 중 ‘GDP 대비 2% 증액 약속’ 지킨 나라 11개국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CNN과 워싱턴포스트(WP) 등 트럼프에 비판적인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팩트체크에 나설 정도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온 이들 매체의 취재 결과 트럼프의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토를 구성하는 회원국 30개국 또는 31개국 가운데 방위비 분담금을 올해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선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킨 회원국이 11개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토 회원국은 실제로는 31개국이지만 정규 군대가 없는 아이슬란드를 집계에 넣느냐 빼느냐에 따라 30개국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이는 나토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나토 방위비 분담 현황(2014~2023년) 보고서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올해까지 나토 방위비 분담금을 자국의 GDP 대비 2%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약속을 지킨 회원국이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지 않다.
다만, 그것이 무려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도 되는 이유까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CNN은 “GDP 대비 2% 선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겠다는 약속은 지난 2014년 영국 웨일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온 합의를 뜻한다”면서 “그러나 이는 자발적인 증액 의지를 표명한 차원이었고, 구속력이 있는 합의는 아니었음에도 트럼프는 이 점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말하지 않은 나토 방위비 분담의 실상
그러나 CNN과 WP에 따르면 트럼프가 나토 방위비 분담이 미국에 매우 불리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따로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보다 많은 나토 방위비 분담금을 내는 나라가 있고, 나토의 주적인 러시아와 접경해 있거나 러시아 부근에 있어 러시아의 침공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된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액은 진작부터 GDP 대비 2%를 넘었다는 사실이다.
나토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폴란드의 나토 방위비 분담금은 무려 GDP의 3.9%로 미국의 3.49%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토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는 나라는 트럼프가 되풀이해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미국이 아니라 폴란드라는 뜻이다.
미국 다음으로 분담금을 많이 내는 나라는 그리스(3.01%), 에스토니아(2.73%), 리투아니아(2.54%), 핀란드(2.45%), 루마니아(2.44%), 헝가리(2.43%), 라트비아(2.27%), 영국(2.07%), 슬로바키아(2.03%)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나토 회원국은 미국과 함께 나토를 주도하고 있는 영국을 빼면 대부분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핀란드의 경우 최근 나토에 가입했지만 핀란드 동부 지역이 러시아와 접경한 나토의 대러시아 최전선에 속한다.
CNN은 "트럼프는 심지어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이 나토 방위비 분담금을 100% 내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바 있다"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 주장이다"라고 비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