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질병인 것도 모자라 폭력성을 부추겨 범죄자를 양성하는 도구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 검찰, 병원에서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모 일간지에서 8일 '내가 썰었어…칼로 베는 살인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이란 기사가 나간지 3일 뒤인 1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지검)이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피의자 조선(33세)씨를 구속기소하며 조씨가 "실직 이후 8개월간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을 하거나, 게임 관련 동영상 채널을 시청하는 등 '게임 중독'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검찰은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듯 잔혹하게 범죄를 실행했다", "젊은 남성을 의도적으로 공격 대상으로 삼아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공격한 사건임을 확인했다"는 등 굳이 게임과 상관 없는 부분까지 가져와서 조씨가 게임을 즐기다 폭력적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발표했다. 그러고는 "게임 중독을 곧바로 동기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범행 직전 게임 중독 상태였다는 심리분석가의 의견이 있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전형적인 '아님 말고'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게임 중 다수가 폭력적인 장르인 것은 맞다. 1인칭 슈팅게임은 화면 속 다른 플레이어들을 쫓아다니며 총으로 '사살'하는 것이 목표다. 인기 있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은 또 어떤가. 칼과 창, 마법까지 동원해서 다수의 게이머와 NPC를 살육한다. 이런 게임을 장시간 즐기다 보면 아무래도 폭력적 성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이 유독 게임만의 문제로 묘사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2년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오리지널 TV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이 드라마는 상금 456억원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이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잔혹한 게임을 벌인다. 게임의 소재는 어린 시절 즐겨 하던 놀이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움직인 사람은 기관총 세례를 받고 '달고나 뽑기'와 '구슬치기'에서 패배하면 즉결 처형된다. 또 '줄다리기'에서 패배하면 그대로 높은 곳에서 떨어져 추락사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기던 놀이를 공포로 물들인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액션 영화 '존윅'은 또 어떠한가. 살인청부업자였던 주인공(키아누 리브스)은 죽은 아내가 맡긴 애완견이 악당에게 살해되자 복수를 결심한다. 4편까지 만들어진 이 시리즈는 '살인청부업자'라는 범죄자를 미회하고 잔혹하게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피칠갑을 한 주인공이 모든 이들을 청소(살해)하고 홀로 살아남아 새 애완견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많은 범죄자들이 게임을 즐겼다. 게임은 TV 드라마나 음악처럼 보편적이고 거의 대부분이 즐기는 대중적인 콘텐츠다. 사실 성인 남성 중 게임을 안 해 본 이를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본다. 그 중 상당수의 작품이 '폭력적'이다. 우리나라 영화는 '조폭'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며 최근 가장 흥행한 '범죄도시'는 3편에 걸쳐 누적 관람객 3000만명을 돌파했을 정도다. 이 영화에서 형사는 말 안 듣는 범죄자를 CCTV가 보이지 않는 '진실의 방'으로 데려간 뒤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경찰의 범법행위를 보여주며 경찰이란 직업을 오해하게 만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검사는 영화의 폭력적인 면이 범죄행위로 이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게임은 국내 콘텐츠 산업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발표한 국내 콘텐츠 산업의 수출액을 살펴보면 게임이 83억6053만달러로 음악(7억6124만달러)나 영화(514만달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게임으로 몰아간다. 이는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사기를 꺾고 국내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어린 시절 즐겼던 게임의 기억을 간직한 채 자라서 좋은 게임을 만들고자 게임회사에 취직한 이들을 범죄집단 취급하는 것이다.
2011년 텍사스대의 마이클 워드 교수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비디오 게임 상점의 증가와 범죄 발생률 감소 간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학계의 의견은 국내에 반영되지 않는다. 방송에서도 게임과 실제 범죄 화면을 비교하는 자료화면을 만들고 고민 없이 방영한다. 잔혹한 범죄의 원인을 찾지 못했거나,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해 급조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부디 기자를 아는 이들은 기자와 거리를 두기 바란다. 기자 또한 매주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이며,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한 잠재적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니까 말이다.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