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3대 도시 타이베이·타이중·가오슝 시내에는 지난 7월 말부터 미소녀 캐릭터 '토코야미 토와'가 래핑된 시내 버스가 돌아다니고 있다. 지하철 역에도 이 캐릭터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광고판이 걸렸다.
한국이라면 이러한 광경에 "게임사가 광고를 썼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는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구독자 110만명을 보유한 방송인이다. 광고를 내건 이들 역시 유튜버의 소속사가 아닌, 팬들이 설립한 동호인클럽 '테트라포드샤'이다.
대만에서 버추얼 유튜버가 래핑된 버스가 돌아다니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소 2년 전부터 토와가 소속된 일본의 버추얼 유튜버 그룹 '홀로라이브'의 동료 토키노 소라·사쿠라 미코·나키리 아야메·호쇼 마린 등이 래핑된 버스가 돌아다녔다. 홀로라이브의 현역 여성 유튜버 56명 중 버스에 래핑되지 않았던 멤버가 더 적은 수준이다.
홀로라이브와 더불어 2대 버추얼 유튜버 그룹으로 꼽히는 니지산지의 남성 버추얼 유튜버 '복스 아쿠마'를 주제로 한 래핑 버스 역시 있었다. 그는 올 상반기 유튜브에서 9억원에 가까운 슈퍼챗 수익을 기록, 버추얼 유튜버를 넘어 전체 유튜버 중에서 가장 많은 슈퍼챗 수익을 기록했다.
아쿠마 외에도 그의 동료 '루카 카네시로'와 '알반 녹스' 등이 래핑된 버스가 대만에서 운영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동료 '슈 야미노'는 SNS서 지난 4월 자신의 래핑 버스를 보고 "OMG(Oh My God)"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버추얼 유튜버는 실제 인간이 모션 캡처 등 가상·증강현실(VR·AR) 기술을 활용, 가상 캐릭터를 내세워 유튜브 등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방송 통계 분석 플랫폼 유저로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적으로 1만6000명의 버추얼 유튜버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만이 이토록 버추얼 유튜버에 큰 관심을 쏟는 이유는 오래 전부터 소위 '덕후 문화'로 불리는 서브컬처 시장에 익숙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현직 대만 총통이 지난 2016년 서브컬처 행사 '팬시 프론티어(FF)' 현장에 직접 방문하는 등, 대만은 서브컬처 문화에 한국보다 더욱 개방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국제 방송 라디오 프리 아시아(RFA)는 "대만의 버추얼 유튜버 열풍은 젊은 세대 매니아 층에 국한된 것이 아닌, 중고등학생부터 회사원, 애 아빠까지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며 버추얼 유튜버 팬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바이오업계 종사자 치우웨이춘은 홀로라이브 '모모스즈 네네'의 광팬이다. 지난 5월 네네의 생일 기념 광고판을 걸기 위한 모금에 참여했던 그는 "내년에 여자친구와 결혼할 생각이지만, 네네를 위한 지출을 멈출 수는 없다"며 "그녀는 내 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구독자 4만명을 보유한 대만인 버추얼 유튜버 로코 로스트(Loco Lost)는 인터뷰에서 "내 방송을 보면서 게임을 한다는 어린 친구들도 있지만, 업무를 보다가 짬을 내서 방송을 보고 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며 "다양한 나이대 팬들이 내 방송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버추얼 유튜버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플러스는 지난 7월, 서울과 부산에서 홀로라이브의 영어권 버추얼 유튜버 그룹 '홀로미스'와 콜라보레이션한 카페를 선보였다. 오는 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릴 '서울 팝 컬처 컨벤션(서울팝콘)에서도 홀로라이브 멤버들이 게스트로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인 버추얼 유튜버들도 여럿 활동 중이다. 데뷔 3년차 음악 전문 버추얼 유튜버 '아뽀키'는 유튜브에서만 30만명, 틱톡에선 무려 370만명이 구독 중이다. 버추얼 유튜버로 구성된 6인조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 4인조 보이 그룹 '레볼루션 하트'는 지난해 데뷔 후 불과 1년만에 각각 20만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동아시아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버추얼 유튜버들이 활동 중이다.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중 상당수는 일본인이나, 411만명으로 가장 많은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홀로라이브의 '가우르 구라'는 영어로 방송을 진행하며 국적은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구라 외에도 홀로라이브 동료 중 인도네시아의 '무나 호시노바', '쿠레이지 올리', '코보 카나에루' 등도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 중이며, 앞서 언급한 니지산지의 '복스 아쿠마'는 영국인이다. 이들 외에도 아르헨티나의 '니무', 멕시코 '파라', 태국 '기푸리' 등도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버추얼 유튜버다.
독일의 가상 공연 플랫폼 기업 센서리움은 "일본에서 시작된 '버추얼 유튜버'는 올해 들어 세계 각지에서 주목하는 대중 문화이자 메타버스 콘텐츠로 자리잡았다"며 "실감 콘텐츠, 그래픽 기술 등이 더욱 발전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거대한 시장을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