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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다퉈 만든 가상인간, 사업성은 '글쎄'

실제 인간·버추얼 유튜버 대비 과도한 비용에 '발목'
"기술력·브랜딩 능력·장기적 비전 두루 갖춰야 성공"

이원용 기자

기사입력 : 2022-06-01 08:00

국내 대표 가상 인간 '오로지'. 사진=오로지 인스타그램이미지 확대보기
국내 대표 가상 인간 '오로지'. 사진=오로지 인스타그램
"마케팅 과정에서 가상인간 인플루언서를 제작해 활용하는 방안을 알아봤는데 적어도 수천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등을 따져보면 가상인간을 활용하는 것보다 실제인간 인플루언서나 버추얼 유튜버 등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최근 여러 업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메타버스·가상인간' 관련 마케팅에 대한 업계의 시선을 묻자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가상인간은 컴퓨터, AI(인공지능) 기술 등을 활용, 실제인간을 모방해 창조한 캐릭터를 일컫는다. 신한라이프의 TV CF에 출연한 '오로지'가 국내 대표 가상인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LG전자·네이버·카카오 등 IT 대기업들과 넷마블·스마일게이트 등 게임사, 그리고 롯데홈쇼핑·GS건설 등 비의 일반 기업들도 가상인간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외에서도 가상인간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인스타그램에서 300만 펄로워를 보유한 '릴 미켈라', 150만명이 구독 중인 '구기몽' 등이 대표적인 가상인간이며 프라다·푸마·육스 등 패션 브랜드와 에픽게임즈·유니티 등 게임엔진 개발사들도 가상인간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기업의 가상인간은 대체로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 활동을 개시하고 광고 모델로 활용되다가 올해 들어 엔터 전문회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음반을 내는 형태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오로지는 사운드 리퍼블리카, 스마일게이트 '한유아'는 YG 케이플러스·CJ ENM과 협력해 단독 음원을 선보였다.

다만 국내 가상인간 마케팅의 실질적인 사업성과는 아직 가시화되지는 않고 있어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오로지의 지난해 연 광고 수익은 실제 인간 스타 전지현의 1/10 수준인 15억원으로 알려졌다. 인스타그램에서 12만7000만명이 팔로우하는 오로지 외에는 10만 구독을 달성한 사례가 없고 가상인간의 노래가 주요 음원차트 100위에 든 사례도 없었다.
가상인간의 미진한 성과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버추얼 유튜버'와 종종 비교된다. 버추얼 유튜버는 실제인간이 모션 캡처 등을 활용한 가상 캐릭터를 내세워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본을 중심으로 지난 2년간 급성장해 현재 30명 이상의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버추얼 유튜버들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 여러 기업들은 버추얼 유튜버에도 주목하고 있다. 넥슨·스마일게이트·컴투스·데브시스터즈 등 게임사들이 관련 마케팅을 진행했으며 이중 일부는 자체 버추얼 유튜버를 운영한다. 국내 10만 구독자 유튜버 6인조로 이뤄진 가상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은 벅스 실시간 1위, 멜론 실시간 14위, 유튜브 급상승 5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일본 버추얼 유튜버 전문기업 애니컬러는 8일 도쿄 증권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애니컬러는 지난해 연매출 76억엔(약738억원), 영업이익 14억엔(약 14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코스닥에 상장된 가상인간 관련 기업 자이언트스텝·솔트룩스·마인즈랩 등은 모두 지난해 400억원 이하의 연 매출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해외에서도 가상인간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사진=에픽게임즈 유튜브이미지 확대보기
해외에서도 가상인간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사진=에픽게임즈 유튜브

가상인간이 실제인간과 버추얼 유튜버를 상대로도 고전하는 이유는 비용 문제가 크다. 이와 관련해서 이제희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가상 인간은 한두가지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딥러닝·컴퓨터 그래픽(CG)·음성 등 여러 기술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션 전문지 보그에 따르면 가상인간 제작에 필요한 최소 비용은 약 800만원 정도이며, 여기에 '불쾌한 골짜기(인간을 어설프게 닮은 대상에 불쾌함을 느끼는 현상)'을 극복하려면 추가로 많게는 수십배의 비용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800만원이면 버추얼 유튜버 업계 안에서 최고급으로 쳐주는 라이브2D 모델을 뽑을 수 있다"며 "단순 마케팅에 있어서도 일반 인플루언서 마케팅처럼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버추얼 유튜버와 달리 가상 인간은 일일이 새로운 모델링을 구현하는 등 높은 비용과 접근성은 모두 걸림돌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케팅 측면에서 '신기한 것'에 지나지 않은 가상인간에 메타버스라는 유행이 맞물려 너무 많은 사업자들이 몰린 것 같다"며 "기술력을 갖춘 이들은 한정됐는데 이들이 뭉치지 못하고 분산돼 오히려 업계 전반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레드오션의 함정'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를 표했다.

가상인간 '루미(Rumi)'를 운영하는 덴츠 싱가포르 지사의 스탠 림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는 비즈니스 전문지 캠페인과 인터뷰서 "가상 인간을 만드는 데 막대한 초기 비용과 8주~12주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인플루언서로서 유의미한 지점까지 올려놓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림 CCO는 "인플루언서로서 가상 인간은 소셜 미디어·라이브 방송·이벤트·제품 출시 등 다방면에 걸쳐 일관성 있는 브랜드 이미지와 실제 인간 못지 않은 캐릭터성을 어필해야 한다"며 "기술력·자본력은 물론 브랜딩·커뮤니케이션에 이르는 다양한 역량,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비전을 두루 갖춘 업체만이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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