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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38) 시스코 (Cisco) … 닷컴버블 붕괴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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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38) 시스코 (Cisco) … 닷컴버블 붕괴 역사의 교훈
증시 과열 경고가 나올 때마다 회자되는 기업이 있다. 2000년 그 유명한 닷컴버블 붕괴 때 주역이었던 시스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IT 열풍으로 닷컴기업들이 뜰 때 시스코는 뉴욕증시 시가총액 1위였다. 정말 잘 나가던 뉴욕증시 대장주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가 십수년 이상 침체에 빠졌었다.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거품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시스코부터 떠올린다.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는 1984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컴퓨터 센터의 동료이자 부부였던 레너드 보삭(Leonard Bosack)과 샌디 러너(Sandy Lerner)에 의해 설립되었다. 서로 다른 프로토콜을 사용하던 컴퓨터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주는 '멀티프로토콜 라우터(Multi-protocol Router)'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정보통신 산업의 전면으로 등장했다. 인터넷이라는 신대륙이 열리던 1990년대, 시스코의 라우터와 스위치 장비는 개척지의 궤도와 신호등 역할을 전담했다. 데이터를 조각(패킷)내어 최적의 경로로 전송하는 시스코의 네트워크 장비 없이는 웹사이트 접속도, 이메일 송수신도 불가능했다. 정보통신 혁명의 최전선에서 ‘인터넷의 백본(Backbone)’을 독점하다시피 점유했던 시스코는, 기술 집약적 초격차를 바탕으로 디지털 문명의 거대한 동맥을 관장하는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 2월 나스닥(NASDAQ) 상장 이후 시스코가 그린 주가 궤적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거품의 증거였다. 1990년대 후반 '닷컴 광풍(Dot-com Boom)'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자, 투자자들은 인터넷 기업의 실적이나 수익 모델을 묻지 않고 자금을 쏟아부었다. Dot-com 간판만 달아도 주가가 수십 배씩 폭등하는 광란의 시대였다. 이 광풍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시스코였다. "닷컴 기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결국 시스코의 장비를 사야 한다"는 명제는 자본시장의 절대 진리로 통했다. 금광을 파는 광부(닷컴 기업)보다 곡괭이와 청바지를 파는 상인(시스코)이 돈을 건진다는 이른바 '곡쟁이 전략(Picks and Shovels Strategy)'의 완벽한 표상이 된 것이다.
2000년 3월 27일, 시스코의 주가는 장중 주당 82달러를 돌파하며 시가총액 5,550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600조 원 이상)를 기록했다. 당시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제너럴일렉트릭(GE)을 제치고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의 왕좌에 오른 순간이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무려 200배에 육박했다. 시장은 시스코의 성장이 영원할 것이라 확신했고, '인터넷 신세계의 황제'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왕좌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신화는 단 수개월 만에 참혹한 비극으로 반전되었다. 2000년 봄부터 시작된 닷컴버블의 붕괴는 시스코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다. 버블 붕괴의 주된 원인은 구조적 과잉 투자와 환상에 기반한 실적 착시였다.

닷컴 벤처기업들은 투자금으로 시스코의 초고가 네트워크 장비를 경쟁적으로 주문했다. 통신 사업자들 역시 향후 인터넷 트래픽이 매년 수십 배씩 폭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아래 과도한 선제 투자를 집행했다. 시스코는 이 중복 주문과 가공의 수요를 모두 실물 수요로 오인했고, 이에 맞춰 공급망과 재고를 천문학적 수준으로 확장했다. 시스코는 자사 장비를 구매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수십억 달러 규모의 융자(Vendor Financing)를 직접 제공했다. 인터넷 벤처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유동성이 고갈되자, 이들이 장비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부실 채권이 시스코의 재무제표로 쏟아져 들어왔다.연준의 금리 인상과 유동성 회수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연방준비제도(Fed)가 과열된 증시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신용 창출로 버티던 닷컴 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맞았다. 수요는 하루아침에 증발했다.

2001년, 시스코는 무려 22억 달러에 달하는 네트워크 장비 재고를 자산 가치에서 전액 감액 처리(Write-down)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굴욕을 겪었다. 주가는 고점 대비 80% 이상 폭락하며 주당 8달러 선까지 추락했고, 시가총액 4,000억 달러 이상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실체 없는 기대감과 과잉 투자가 초래한 실적 착시가 자본시장에서 어떻게 처단되는지 보여준 극단적 사례였다.시스코의 닷컴버블 잔혹사는 반도체 및 빅테크 산업 역사에 심오한 궤적과 교훈을 남겼다. 그 첫째 교훈이 "인프라 수요의 비선형성과 시차(Lag)를 경계하라"는 점이다. 기술 혁신이 대세라 할지라도 실물 경제가 이를 수용하고 실제 수익을 창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술의 잠재력(Potential)과 당장의 채택 속도(Adoption Rate) 간의 괴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선제적 과잉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기업을 절벽으로 내몰 수 있다.

둘째 교훈은 "공급망 내의 가짜 수요를 가려내는 정밀한 안목을 길러야 한다" 는 것이다. 중복 발주와 과다 재고 누적은 호황기에는 착시를 일으키지만, 불황기에는 기업의 목줄을 죄는 칼날로 돌아온다. 시스코의 실패 이후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공급망 관리(SCM)와 재고 감시 체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게 되었다.셋째, 기술 자체의 우위보다 '수익 구조(Monetization)'의 지속 가능성이 핵심이다. 하드웨어 장비 판매라는 일회성 매출 구조는 업황 하락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구독형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비중을 확대하는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전 세계 IT 업계에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닷컴버블의 쓰라린 상흔을 딛고 생존한 시스코는, 오늘날 인공지능(AI) 혁명의 한복판에서 다시 한번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의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생성형 AI와 거대언어모델(LLM)의 폭발적 성장은 단순한 컴퓨팅 파워(GPU)의 증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만 개의 GPU가 병렬로 연결되어 거대한 데이터를 지연 없이 주고받아야 하는 'AI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의 초고속화가 필수적이다.시스코는 이 대목에서 AI 인프라의 새로운 핵심 축을 담당한다. 시스코는 자체 개발한 고성능 네트워크 ASIC인 'Silicon One' 아키텍처를 앞세워 800Gbps 및 1.6Tbps급 초고속 데이터 전송 스위치를 공급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병목 현상(Bottleneck)을 해결하는 고성능 스위칭 네트워크는 엔비디아의 GPU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구동하는 핵심 동력이다.

울트라 이더넷 콘소시엄(UEC)도 시스코가 주도하고 있다. 시스코는 기존의 폐쇄적 인터커넥트 방식에서 벗어나, 대규모 AI 워크로드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오픈소스 표준 이더넷 기술을 주도하며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에 맞서는 글로벌 빅테크 연합의 핵심 장비 공급자로 나섰다. 사이버 보안과 데이터 관측 가능성(Observability)의 통합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시스코는 280억 달러를 들여 글로벌 빅데이터 및 보안 분석 기업 스플렁크(Splunk)를 전격 인수했다. AI 시대에 더욱 복잡해지는 멀티클라우드 환경에서 네트워크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AI 기반의 위협 탐지 및 데이터 관찰 가능성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보안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완결지었다.

시스코의 40년 경영 역사는 벤처 창업가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 그리고 거대 기관투자자 중심의 주주 구조로 변모해 온 미국 빅테크의 전형적인 지배구조 변천사를 보여준다. 설립자인 레너드 보삭과 샌디 러너 부부는 초기 투자 유치 과정에서 전문경영인 존 모그리지(John Morgridge)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끝에, 1990년 회사 상장 직후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시스코를 떠났다.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 CEO로 재임한 존 챔버스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시스코를 글로벌 1등 테크 기업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닷컴버블의 폭락 속에서도 과감한 구조조정과 기술 재투자를 단행하여 회사를 완전히 정상화시켰다.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괄하고 있는 척 로빈스 회장 겸 CEO는 하드웨어 중심이던 시스코를 '소프트웨어 및 구독형 서비스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반복 매출(ARR)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확립했다.

현재 시스코 시스템즈는 특정 개인이 지분을 독점하는 형태가 아닌,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지분을 나누어 소유한 전형적인 분산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다.뱅가드 그룹 (The Vanguard Group)이 약 9% 내외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다. 블랙록 (BlackRock, Inc.)은 약 8~9%의 지분을 보유하며 2대 주주 위치를 점하고 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State Street Corporation)도 5% 안팎의 지분을 소유한 주요 기관투자자다. 이들 미국 'Big 3' 패시브 자산운용사가 전체 지분의 20% 이상을 안정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며, 지분 75% 이상이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에 의해 분산 소유되어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이사회가 투명하게 경영을 감시하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주주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환원하는 선진화된 주주가치 극대화 모델을 정착시켰다.
2000년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가 겪었던 '과잉 기대와 폭락의 교훈'은 현재 진행형인 AI 버블 논쟁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엔비디아를 위시한 AI 반도체 및 인프라 기업들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시스코의 역사는 "실제 수익성(ROI)이 담보되지 않은 인프라 과잉 투자는 반드시 냉혹한 경작기를 거친다"는 원론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시스코의 부활은, 거대한 버블이 꺼진 후에도 살아남은 진정한 기술 기업은 문명의 지형도를 바꾸는 핵심 거목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버블은 거품이었을지언정, 그 거품이 깔아놓은 광케이블과 라우터 덕분에 인류는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그리고 AI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닷컴버불 붕괴의 한 중심에 있었던 시스코가 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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