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미국의 신(新) 유행어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의 경제학
요즈음 미국에서 가장 뜨는 유행어는 단연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이다. 영어 어포드빌리티는 ‘~할 여유가 있다’, 또는 ‘~을 감당할 수 있다’라는 뜻의 동사 ‘어포드(Afford)’와 능력을 나타내는 접미사 ‘이빌리티(Ability)’가 결합한 형태다. 사전적으로는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 혹은 ‘적당한 가격’을 의미한다.
지금 미국 중산층이 체감하는 이 단어의 뉘앙스는 사전적 정의와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오늘날 어포더빌리티는 평범한 소득을 가진 이들이 주택을 구입하고, 자동차를 리스하며, 매월 식료품을 사고 의료보험료를 내는 일상적인 행위 자체가 재정적 감당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비명에 가깝다. 즉,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등한 물가와 자산 가격 앞에서 느끼는 가혹한 ‘생존 불가능의 충격’을 상징하는 단어로 완전히 재정의되었다.
미국 부동산 중개인협회(NAR)와 주요 금융기관들이 발표한 주택 구매력 지수(Housing Affordability Index)는 역대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주택 가격에 더해,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던 모기지 금리는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을 모아 집을 산다는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비단 부동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맥도날드에서 세트 메뉴 두 개를 주문하면 30달러가 훌쩍 넘어가고, 대형마트의 카트를 절반도 채우지 않았음에도 영수증에는 수백 달러가 찍히는 현실이 바로 미국이 직면한 ‘어포더빌리티 충격’의 본질이다.
중요한 점은 이 충격이 단순히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의 내수 경기 침체나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가 구조적으로 붕괴하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이자,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집어삼키고 있는 거대한 ‘유동성 폭발’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자산 가격이 폭등하는 속도를 노동 소득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 즉 ‘내가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만 떨어지는 현상’이 전 지구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어포더빌리티 충격을 가속화하고 유동성 폭발의 기관차에 멈추지 않는 연료를 공급하는 핵심 동인은 미국의 정치·경제적 역학 관계와 지정학적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과 연이은 대외 정책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통화량 증가의 강력한 도화선이 되었다. 먼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중동 지역에서 촉발된 지정학적 리스크, 즉 이란을 중심으로 한 전쟁 위기의 고조다. 중동의 군사적 충돌은 국제 유가를 자극하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원자재 비용과 물류비를 동시에 밀어 올리며 전방위적인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과거의 전통적인 경제학 공식대로라면, 이러한 공급 쇼크형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리고 통화 긴축을 단행해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와 강력한 경기 부양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연방준비제도(Fed)를 향해 노골적인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해왔다.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 폭탄’ 정책 역시 미국 내 수입 물가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음에도, 행정부는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저금리 기조와 유동성 공급을 강제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정책과 인프라 투자, 그리고 방위비 증액은 필연적으로 정부의 재정 적자를 극대화한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채를 끊임없이 발행하고 있으며, 미 국채의 최대 매입처는 결국 중앙은행이 될 수밖에 없다.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돈을 찍어내는 이른바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 of Debt)’가 고착화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이란 전쟁 위기로 인한 공급망 불안,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국가부채의 폭증, 그리고 정치적 압력에 밀린 금리 인하 기조가 한데 맞물리면서 시장에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통화량이 유입되었다. 바야흐로 ‘유동성 폭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재 목격되고 있는 미국 국가부채의 폭증과 유동성 남발은 비단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조된 현상이 아니다. 이는 미국 정치권이 오랜 기간에 걸쳐 부채 한도라는 제도적 방화벽을 스스로 해체해 온 역사적 축적의 결과물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미국은 한 차례 극심한 부채 한도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당시 야당이었던 공화당과의 극단적인 대치 끝에 타결된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 of 2011)'은 단기적인 한도 증액을 대가로 강제적인 지출 감축(시퀘스터) 장치를 유효화했으나, 결과적으로 임기 내내 국가부채가 10조 달러 수준에서 약 20조 달러로 두 배 가까이 폭증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때부터 미국 정치권은 부채 한도 증액을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서도, 정작 뒤로는 돈을 찍어내는 행위를 묵인하는 이중적 행태를 고착화했다. 이러한 부채 확대의 종착점이 바로 미국 금융 역사에 거대한 획을 그은 ‘OBBBA 법(One Big Beautiful Bill Act)’의 통과다. 미국 정치권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부채 한도를 유예해 오다가, 결국 OBBBA 법을 통해 국가부채 한도를 수십조 달러 규모로 대폭 늘려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OBBBA 법의 제정은 미국 정부가 더 이상 부채 통제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전 세계에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한도가 무력화되자 정부의 차입 능력은 무제한에 가깝게 확장되었고, 이는 금융 시장에 천문학적인 달러 유동성이 여과 없이 배출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바마 시절 마련된 부채 비대화의 씨앗이 OBBBA 법이라는 거대한 괴물로 성장하여 전 세계 화폐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유동성 폭발이 가져오는 가장 잔인한 결과는 화폐 가치의 침식이다. 시장에 달러와 원화가 흔해질수록, 그 화폐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실물 자산의 가격은 비례해서 상승한다.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금융 상식에 갇혀 있는 개인들은 가장 먼저 ‘벼락거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많은 이들이 리스크를 회피하고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현금을 보유하거나 은행의 예적금에 자금을 묶어둔다. 원금이 보장된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율이 은행이 제공하는 예금 금리를 상회하는 변동성 시대에, 현금 보유는 사실상 ‘마이너스 실질 수익률’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은행 통장에 찍힌 숫자는 그대로 유지될지언정,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의 면적과 주식의 수량, 심지어 식료품의 양은 매달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금을 쥐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매일 자산이 강제로 삭감당하는 잔인한 메커니즘이다.
자산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유동성 폭발은 자산 가격의 상방을 열어젖힌다.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려는 거대 자본들은 현금 네트워크를 탈출해 부동산, 주식, 그리고 가상자산과 같은 위험 자산으로 무섭게 돌진한다. 그 결과 자산을 소유한 자들의 부는 가만히 있어도 증폭되는 반면, 현금만을 신봉했던 이들의 구매력은 바닥으로 추락한다. 어제와 똑같이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했을 뿐인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사회적 계급이 하락해 있는 ‘벼락거지’ 신드롬은 유동성이 공급 과잉될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사회적 재앙이다.
그렇다면 이 냉혹한 돈의 질서 속에서 개인과 기업은 어떻게 자산을 지키고 키워내야 하는가. 과거의 정기예금 중심, 국내 자산 편중 구조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유동성의 흐름을 타는 입체적인 포트폴리오 재편이 요구된다.
1. 현금 비중의 최소화와 실물 자산(Hard Assets)으로의 대피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자산 포트폴리오 내에서 순수 현금 및 확정금리형 자산의 비중을 유동성 관리에 필요한 최소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화폐 가치 하락을 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실물 자산으로의 대피가 최우선이다. 대표적인 하드 에셋인 우량 부동산, 그리고 인플레이션 헤지의 오랜 상징인 금(Gold)에 대한 비중 확대가 필수적이다. 특히 OBBBA 법 통과 이후 가속화된 미국의 부채 폭증은 달러 자체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지므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의 가치는 유동성 폭발기마다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수익률을 증명해 왔다.
2. 글로벌 원자재 및 에너지 섹터 편입
미국의 재정 적자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리는 국면에서는 원자재 가격의 구조적 상승이 동반된다. 따라서 포트폴리오의 일정 부분을 원유, 천연가스, 구리, 곡물 등 글로벌 원자재 인덱스나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배분해야 한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내 자산의 가치가 동시에 상승하는 자연스러운 방어벽을 형성해 준다.
3. 가격 결정력을 가진 독점 기업 주식으로의 집중
모든 주식이 유동성 폭발의 수혜를 입는 것은 아니다.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할 수 있는 강력한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을 가진 기업만이 생존한다. 글로벌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이나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을 가진 첨단 반도체 기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생산 비용이 올라도 제품 가격을 올려 마진을 유지할 수 있는 독점적 우량주에 자본을 집중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4. 대체 디지털 자산(Alternative Digital Assets)의 전략적 자산 배분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자산은 이제 단순한 투기 대상을 넘어, 정부의 무제한 돈 찍어내기와 부채 한도 증액에 저항하는 ‘디지털 금’이자 대안적 자산 클래스로 제도권에 편입되었다. 발행량이 법적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특성은 OBBBA 법과 같은 유동성 폭발 정책이 쏟아질 때 자산의 가치를 보존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변동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으나, 전체 자산의 5~10% 내외를 대안 자산으로 배분하여 화폐 시스템의 붕괴 리스크를 헤징하는 전략은 현명한 선택이다.
돈의 질서가 바뀌었다. 국가가 빚을 내어 생명을 연장하고, 중앙은행이 정치적 외압에 밀려 화폐를 쏟내며, OBBBA 법과 같은 조치로 부채 한도를 무력화하는 시대에 전통적인 ‘저축의 미덕’은 금융적 타성에 불과하다. 미국의 어포더빌리티 충격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며, 조만간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중산층이 마주할 미래다.
유동성 폭발의 시대에 가장 큰 리스크는 위험 자산에 투자해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화폐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무리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변화한 돈의 패턴을 외면하는 나태함은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거대한 화폐의 범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산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글로벌 자본의 길목에 내 돈을 먼저 배치하는 전략적 결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부의 대이동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관성을 깨고 흐름을 타는 자만이 이 냉혹한 질서의 승자가 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